열두 달 중 열한 달 흘렀지만
아직 한 달이라는 시간 남아
더 늦기 전에 고마움 전하자

 

이강하 시인

특별한 날, 꽃다발을 선물 받았다면 누구든 그 행복한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꽃들이 꽃병에 꽂아지는 순간 꽃병과도 오래오래 향기롭기를 원한다. 그러나 꽃들이 꽃병과 지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물과 상관없이 꽃잎과 줄기는 금세 시들어버린다. 그렇다고 상대의 마음이 떠나버린 것은 아니다. 

꽃을 받는 순간 이미 상대의 마음은 내 안에 있다. 그 마음은 수많은 씨앗이 되어 싹트고 있는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반짝거리는 태양의 세계를 넓혀가기도 한다. 한 계절 내내 꽃이 피어 또 다른 계절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오래 전 문학상 시상식 때 어느 선생님이 필자에게 안겨준 꽃다발이 그랬다. 문단 선배님과 동료들이 보내온 초대장과 메시지가 그랬다. 그리고 울산매일신문사 칼럼 청탁은 필자에게 또 다른 의미였다. 새벽 별을 담은 자전거의 속도처럼 선하고 곧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용기를 품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늘진 책방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수술한 부위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고 필자가 가장 멀리하고픈 아버지의 세계가 찾아온 것이다. 생각하고 바라보기보다는 만져보고 스치는 것들에 더 익숙해져한다는 도시의 골목길이 고통이었다.한길만 고집한 아버지와의 소통도 부드럽지 못했다. 아버지의 기도만큼 기대치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혜가 뒷받침되어야하는데, 필자의 무질서한 정신적 변명은 오래 이어졌다.

건강이 무너지면 이렇게도 되는구나, 싶다가도 어떤 이유가 되었든 연락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친구의 근황이 더 궁금해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지금 내 밖의 세상이 두렵다면 아직 젊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은 11월이므로.

11월은 필자가 가장 좋아한 달이다. 11월 속에는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함께 있다. 7일은 입동이고 22일은 소설이다. 입동이 지났지만 남쪽의 한낮은 아직 따뜻하다. 소설이 지나야 찬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입동이 지났다고 하지만 어느 지역에서는 가을걷이로 한창 바쁜 곳도 있을 것이다. 중순이 지나고 소설이 지나면 농촌에서도 느긋하고 평화로운 한낮의 여유로움도 갖겠다. 

11월은 잉걸불의 달이기도 하다. 잉걸불에서 막 구워낸 갈치와 구운 김이 생각난다. 아늑한 토담방이 그립다. 복잡한 사상을 멀리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지인과 함께 한 점심식사가 생각난다. 그날 기억에 남은 최고의 반찬은 김치찌개와 구운 김이었다. 아!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김. 그 옛날 어머니께서 손수 구워주신 잉걸불 맛이었다. 11월이 아니면 언제 또 만날지 모른다고 해 급히 마련된 자리, 어머니의 방처럼 편안했다. 엔젤트럼펫이 핀 골목길, 에스프레소 콘파냐도 맛이었다. 여전히 필자의 운전은 서툴고 걸음걸이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상대의 표정만큼은 야생 소국이었다. 그날 필자는 또 하나의 마음을 받고 또 감사했다.

내일은 또 어떤 꽃이 되어 하늘을 치어다볼까. 어떤 나뭇가지가 되어 다시 아버지를 만나러 갈까. 다시 시작하겠다는 용기는 두려우면서도 심플한 빛의 통로가 될 것이다. 그동안 은혜를 베풀어주신 모든 분께 어떤 마음을 드려야하나. 그래 그러자. 등이 반듯한 모습만이라도 보여드리자. 아직 11월이지 않는가. 나는 비스듬히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밀어내면서 천천히 석남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11월의 석남사 계곡은 금물결이다. 금방이라도 태양의 후예들이 말을 타고 튀어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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