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침이 과할수록 이로운점 하나도 없어
진정 아이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부모라면
선행학습 대신 배움의 맛 알도록 지원해야  

 

한강희 개운초등학교 교장

지난 10월에 6학년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다녀온 적이있다. 2박3일의 일정 중 마지막 코스인 과천국립과학관 체험을 하고 버스에 오르자 한 아이가 담임 선생님께 질문을 한다.

“선생님, 몇시쯤 학교에 도착합니까?”

“예, 차만 막히지 않는다면 5시 쯤 도착할 것입니다.”

“조금만 늦게 가면 안되나요?” 

“아니, 왜?”

“5시에 도착하면 엄마가 학원가라고 할 것 같아요.”

아이의 그 대답에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여러가지 상념에 사로잡혔다. 설마 피곤에 지친 아이에게 학원가라고 할까? 어쩌면 저 아이가 지레짐작으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학원에 가라고 할 수도 있을 거야. 한 번 결석하면 진도를 따라 갈 수 없으니. 과연 저 아이는 자신이 원해서 학원에 다닐까? 어쩌면 부모님의 강한 권유로 다닐 것이다. 그렇다면 학원에 가는 것이 즐거울까?    

문득 지인의 딸이 떠올랐다. 벌써 20년 쯤 일이다. 딸은 어느 정도 공부를 했다. 당시에 학급엔 운영위원제도가 있었다. 학급당 인원이 4~50명 쯤 됐는데, 8명의 운영위원을 뒀었다. 운영위원은 공부가 상위그룹이면서 생활태도도 양호한 학생을 선생님이 추천하면 학생들이 선출했었다. 지인의 딸은 운영위원이었지만 학력이 썩 뛰어나진 않았다. 그 때 학교앞엔 피아노, 미술, 컴퓨터 학원들이 주를 이루었고, 영어와 수학 학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인은 딸이 저학년 때 피아노학원을 보냈지만, 지겨움을 느끼고 싫어하자 중단했다. 약간 불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해 안심했다. 중학교 입학원서를 쓸 무렵 다른 아이들은 입시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며 반 편성 배치고사에 대비했다. 다른 아이들이 겨울방학 내내 학원에서 공부에 몰두하고 있을 때 지인의 가족들은 친척집 방문과 국내 여행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딸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날 담임 선생님은 실장 후보자를 칠판에 적기 시작했다. 그 후보자는 반 편성 배치고사에서 10위 안에 든 학생들이었다. 딸아이도 내심 기대했다. 자신은 초등학교 때 운영위원을 했었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써 내려갈 때마다 다음엔 나오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끝내 자신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풀이 죽은 딸아이는 집에 돌아와 속상해하며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지인 역시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때부터 딸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줬다. 딸은 학원수강을 마친 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 다음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했고, 지인은 딸을 데려 오는 일, 그저 보호에만 충실했다. 두 달 쯤 뒤 중간고사에서 딸아이는 학력우수상을 받았고, 그 뒤부터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해 항상 상위수준을 유지했으며,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도 진학했다.  

교육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자기주도학습’이 아닌가 쉽다. 자기주도학습이 그만큼 중요하나 잘 안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자신이 주체가 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통제 관리할 수 있는 힘, 그 힘을 바탕으로 학습에 임한다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일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가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삶을 살며, 사회적으로는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가 될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 못하다’는 뜻이다. 요즘은 너무 많아서 탈이 난다.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성인병에 걸리고,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교통체증도 생기고 공기도 오염된다. 교육에서도 너무 지나쳐 문제다.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학습의 양은 한정돼 있는데, 성인의 기준으로 먹이려 한다. 아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데, 자꾸 먹이려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과도한 학습 흡입으로 소화불량이 생겨 실제 영양분인 지식 흡수는 부실하고, 또  학습에 메스꺼움을 느껴 의욕도 상실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부모는 부모대로 속을 끓이고 아이는 아이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정이 행복할까?     

아이들을 목마르게 해보자. 아이가 요구하지도 않는데 “날씨가 더우니까 아이스크림 먹어라” 하기보다는 먼저 목마르게 한 다음 “아, 더워! 시원한 것 없나요?”하도록 해보자.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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