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말에서 묻어나는 ‘인향(人香)’
사람 됨됨이와 품성 고스란히 드러나
말 한마디에 신중한 자세 가져야

 

서경환울산광역시 중구의회 의장

사람에게는 향기가 있다.

흔히 ‘체취’라고 하지만 이는 딱딱한 사전적 느낌으로 다가오기에 ‘인향(人香)’이란 표현이 좀 더 나을 듯싶다. 꽃이 내뿜는 향기는 바람에 실려 백 리까지 퍼져 나간다. 그래서 ‘화향백리(花香百里)’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꽃향기가 아무리 진해도 그윽한 사람의 향기에 비할 순 없다. 가까이 있을 땐 느낄 수 없지만 향기의 주인이 곁을 떠날 즈음 그 사람만의 인향이 밀려온다. 이 때문에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퍼져 나간다하여 ‘인향만리(人香萬里)’라고 한다. 이처럼 꽃의 향기는 바람이 전하고 사람의 향기는 마음이 전한다. 향기로운 꽃은 순간적인 행복감을 안겨 주지만 향기로운 사람이 전하는 냄새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인향은 어디에서 베어 나올까?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은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말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담겨 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사람의 성질이나 됨됨이를 뜻하는 ‘성품(性品)’이나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을 뜻하는 ‘품격(品格)’ 등에 쓰이는 한자 ‘품(品)’의 모양새다. ‘품(品)’의 구조를 보면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입을 통해 내뱉은 말이 쌓이고 쌓여 그 사람의 품성이 된다는 의미다. 

말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말은 한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중국 역사에서 대표적 정치적 혼란기로 꼽히던 당나라 말부터 5대 10국까지 다섯 왕조 동안 11명의 임금을 섬기며 벼슬을 했던 재상 풍도(馮道)는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라는 글을 통해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 말을 아껴야 한다”는 뜻이다. 별 뜻 없이 내뱉은 말이 흉기가 돼 상대의 몸과 마음을 베어 결국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얼마 전 울산의 유명 정치인이 여성 비하 발언 논란에 휩싸여 진통을 겪고 있다. 이 분은 현 집권여당에 몸담으며 오랜 기간 울산에서의 정치활동으로 신임과 덕망을 쌓아 왔노라 나름 자부했지만 말 한마디가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한때 중구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 내용에 따르면 고위 당직자인 이분은 “앞으로 여성당원을 만나는 일은 모텔에서 하라”고 다른 당직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지나가는 말, 혹은 농담으로 한 말일지 모르나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치인으로서 입에 담을 만한 내용은 아니다. 아직 진위여부는 가려지지 않았지만 만약 실수로라도 여성비하 발언을 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쌓아왔던 품위나 품격이 더 이상 실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비록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천 사람의 귀에 들어가고 결국 다시 자신의 귀로 귀결되는 것이 말의 본질이란 점을 상기해 보시길 권유해 드린다.

우리 중구의회도 동료의원 간 허위사실을 공공연히 유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이미 수개월째 갈등과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역시 세치 혀에서 비롯된 것이니 함께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안타깝다.

지난 2011년 1월 12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의 추모식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도중 갑자기 말을 멈추고 청중을 바라봤다. 51초간 정적이 흐른 무언(無言) 연설이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슬픔의 메시지는 정적과 함께 전달됐고 청중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때론 침묵이 더 무겁고 깊은 울림으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다.
말이 적으면 근심이 줄어들듯, 백 마디 말보다 한 순간의 침묵이 우리가 가진 인향을 더욱 멀리 퍼뜨리고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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