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각자의 기억 갖고 사는만큼
성과 위주의 도시재생은 의미 없어
삶 이야기 모아 희망의 바람 만들자

 

이철호
(사)공동체창의지원네트워크 상임이사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의 놀이도구는 딱지, 구슬, 지우개, 동그란 만화가 그려진 딱지 같은 것들이 주였고 그런 것들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에 따라 아이들 사이에선 은근한 우월감이 생기기도 했다. 지금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도구들을 이용한 놀이가 무엇이든 승부의 결과로 상대방의 놀이도구를 하나씩 빼앗는 방식을 취했다. 그 승부의 끝엔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나누어지고 누군가는 빈손이 되며 놀이는 끝이 난다. 어른들의 도박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잔돈 몇푼을 나누며 위로를 하고 마무리 짓는 어른들의 개평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다시 나누어야만 놀이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방식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강구야’, ‘강구리’, ‘강구요’ 등으로 불리었다.

오픈사전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 그 단어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주로 아이들이 사용한 말로, 소유한 물건을 사람이 충분히 있는 곳에서 버리면서 외치는 말. 물건은 누구나 주워서 가질 수 있으며, 먼저 줍는 사람에게 소유권이 있음. 단, 줍는 사람 간에 소유권 분쟁이 발생하여도 이전 주인은 관여하지 못함. 현재는 거의 소멸된 말임.’

이름보다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선배가 있다. 한번도 같은 학교, 같은 회사를 다녀본 적도 없었다. 활동하는 영역도 전혀 달랐지만, 최근 수년간은 행적을 따르는 것만으로 벅찬 삶을 살고 있으니 자연스레 선배라 여기고 살게 된 듯하다. 그 선배 별명이 ‘강구야’다. 같이 어울리기 위해 나눠야 하는 것, 그 어린 날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살기 위해 그는 그렇게 불리길 원한다. 필자는 그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과 그 경험의 사유를 끝없이 풀어놓는다.

그는 세운상가 도시재생사업의 총괄코디네이터로 사람들의 기억을 모아내고, 또 그것들을 활용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다. 세운상가는 전자제품과 관련해 유명세를 떨치며 서울 중심부에 자리 잡은 곳이지만, 최근엔 제 기능을 잃었다. 더 이상 손님이 찾지 않고, 일이 없으니 돈을 벌지 못하고, 상가마다 돈이 돌지 못하니 생기를 잃은 곳. 그런 특유의 분위기가 점점 더 퍼져 사람들이 더 찾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그 선배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찾아다니며 ‘장인’이라 부르고 그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일을 한다. 그들의 능력을 정리하고 알려 여전히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이어주는 방식으로 재생사업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가 그에게 보내온 짧은 편지가 있다. ‘제가 9살 즈음 아버지께서 생일 선물로 저를 데리고 직접 용산에 가서 구입했던 워크맨입니다. 어린 저는 이 워크맨을 통해 처음으로 나만의 음악을 접했고, 이것은 제게 어린 시절의 대중음악들과 함께 아버지와의 행복한 기억이 담긴 더없이 소중한 물건입니다. 최근 오래된 물품을 정리하다 이 워크맨을 발견하고선 작동시켜봤는데, 전원은 들어오지만 작동이 되진 않더군요. ‘이걸 언제 시간을 내서 어디로 찾아가서 고쳐야 할까’ 싶었고 ‘이젠 정말 추억으로 간직해야 하는 물건이 되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상자 속에 보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세운공공의 ‘수리수리얍’ 프로젝트 관련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반신반의하며 홈페이지에 의뢰 했고, 수리 요청이 접수됐다는 연락을 듣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수리 받은 후 제게 돌아온 워크맨으로 아이와 함께 음악을 들었습니다.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했습니다. 제게 단지 물건을 수리해준 것뿐만 아니라 저와 제 가족의 추억까지 함께 되살려준 것입니다. 도와주신 수리 장인분과 세운공공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수리수리얍’ 프로젝트에 더 많은 분들이 참가해 각자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다시금 되살려줄 수리 장인분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람은 각자 다른 기억을 갖고 살아간다. 각자가 갖고 살아온 기억을 바람이 실어다 주고 그 기억이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며 지역을 위한 희망의 바람이 생긴다. 그리고 그런 작은 어우러짐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의 활력을 가져온다.

최근 들어 중앙과 지방정부를 가리지 않고 도시재생이 난리이다. 재생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해 내겠다며 눈에 보이는 성과나 독특한 기획에 치우친 것을 보면 마음이 아리다. 바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의 바람을 하나씩 모아 지역공동체에 희망의 바람으로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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