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성 울산박물관 학예연구관

비슷한 듯 다른 발차기 놀이 축국·팩차기·제기차기
좁은 공간에서 적은 인원·준비물로 즐길 수 있어
올 겨울 세가지 놀거리 체험 통해 동장군 물리치길

 

네덜란드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는 인류의 특징을 한마디로 놀이하는 존재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 표현했다. 인류에 있어서 놀이는 인간 존재의 기본을 이루고 있고, 인류문화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 한다. 사람들은 항상 놀이를 추구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놀이를 통해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겨울 강추위 날씨 속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어떤 놀거리를 찾는다. 그래서 겨울철에 할 수 있는 놀이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필자가 대학 다닐 때, 누군가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학생들이 개발해 캠퍼스 내에서 하기 좋은 놀이 하나가 있었다. 바로 ‘팩(pack)차기’다. 이것은 1980년대 후반 전국 모든 대학 캠퍼스에서 유행했다. 특히 남학생들이 많이 있는 공과대학에서 크게 유행했다. 우유를 마신 후 종이 팩을 이용하거나, 자동판매기의 커피를 마신 후 종이 컵을 이용해 발 차기한 놀이다. 군대에서 전역한 복학생들이 군복무 시절 익숙한 족구 대신에 빈 우유팩을 제기처럼 차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거의 정설이다. 

우유팩을 잘 겹쳐서 육면체를 만든 후, 사람 여럿이 원형으로 둘러 서서 차 넘기며 노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인데, 좁은 공간과 3~4명만 모여도 가능한 놀이이기 때문에 대학 구석구석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늦가을이나 초겨울의 살살한 날씨 속에서는 더욱 많이 하곤 했다. 학생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의 팩차기 놀이는 교양필수 과목처럼 되었다. 심지어 도서관 주변이나 강의실 가까이에서 수시로 팩차기를 즐기는 학생들로 인해 캠퍼스 내에서 일종의 소음공해(?)로 취급받기도 했다. 간혹 정숙이 요구되는 장소에는 ‘팩차기 금지’ 라는 푯말이 붙기도 했다.     

팩차기와 유사한 놀이, 축국(蹴鞠)이 옛날에도 있었다. ‘글자 그대로 공을 찬다’라는 뜻이다. 영국을 종주국으로 한 현대스포츠 축구(蹴球)와는 다른 개념이다. 가죽 주머니로 공을 만들고, 그 속에 곡식 겨나 동물 털을 넣어 발로 차던 놀이인데,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말까지 유행했다. 군대에서 병사들의 훈련과 체력증진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놀이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축국은 우리나라와 더불어 중국과 일본에서도 고대부터 행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축국의 형태는 고려시대부터 더욱 발달해 겨나 털 대신 공기를 불어넣은 공이 등장했다. 놀이 또는 경기 방식과 규칙은 매우 다양했다. 팀을 나누어 경기를 하기도 했고, 4~5명이 둥글게 모여 돌려차기를 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홍석모가 쓴「동국세시기」에서는 겨울철 민속놀이로서 “젊은이들은 축국을 한다. 공은 큰 탄환만 하며 위에 장목을 꽂았다. 둘이 마주 서서 차고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잘 차는 것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겨울철 손쉽게 할 수 있는 놀이가 또 하나 있다. 제기차기다. 제기차기를 축국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제기차기 놀이방식이 축국과 흡사해서 그럴 것이다. 차는 방법에는 발들고 차기, 양발차기, 외발차기, 뒷발차기 등이 있고, 놀이 방식이 한 사람씩 차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마주 차기도 한다. 제기는 엽전이나 구멍 난 주화(鑄貨)를 얇고 질긴 종이나 천으로 접어서 싼 다음, 구멍에 꿰고 그 끝을 여러 갈래로 찢어서 너풀거리게 만든다. 제기에 종이나 비단 술 또는 새의 깃을 달거나 붙이면, 바르게 떨어져서 다시 차기 쉽다. 

축국, 제기차기, 팩차기 모두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고, 2~3명만 모여도 할 수 있는 놀이다. 이번 추운 겨울 지나는 동안, 동장군에 기죽어 지내기보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모이면 한번쯤 해보면 어떨까. 팩차기의 팩은 우유팩을 접어서 사용하면 되고, 축국 공은 요즘 문구점에 파는 스펀지 공 같은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고, 제기는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운동도 되고, 놀이도 되고, 추위도 이길 수 있어, 어떤 것보다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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