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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칼럼] 우울한 신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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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7.11.2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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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82달러였다. 기술도 없었고 투자하려해도 돈을 빌려주는 나라가 없었다. 국가 신용이 없던 때였다. 박정희 정권은 재일교포 사회를 선진 기술과 돈을 들여올 통로로 주목했다. 1965년 일본과의 국교 수립이 기회였다.


박정권은 1967년 첫 발을 디딘 롯데 신격호 회장에게 당초 종합제철소 건설을 부탁했다. 신회장은 일본 제철기업의 도움으로 설계도면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철강사업은 국가가 직접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그 대신 롯데에는 외국 손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서비스 산업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군말 없이 제철소 설계도면을 정부에 넘긴 신 회장은 롯데제과, 롯데호텔을 잇달아 세워 한국의 식품·호텔산업 선진화 길잡이 역할을 했다.


롯데는 출범 50년 만인 2017년 연매출 100조원, 국내외 임직원 18만 명의 국내 5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35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런 롯데가 고립무원이 됐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죄로 중국 보복의 타깃이 돼 치명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어디서도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못 들었다.


신회장을 둘러싼 상황도 갈수록 악화됐다. 11월 초 검찰은 배임과 횡령 혐의를 적용해 징역 10년과 벌금 3,000억 원을 구형했다. 11월 21일(음력 10월 4일)에는 95번째 생일을 맞았다. 중증 치매 증세로 한정 후견인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올해로 롯데 계열사의 등기임원에서 모두 내려와 경영 일선에서도 물러났다.


신회장은 집무실 겸 거주지인 서울 중구 롯데호텔 신관 34층에서 우울한 생일을 보냈다. 부인인 시게미쓰 하스코 여사와 시게미쓰 여사의 여동생 내외,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부부 등이 곁을 지켰다. 매년 생일을 온가족과 함께 보냈으나 2014년 시작된 경영권 분쟁 이후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안팎으로 동네북 신세가 된 롯데와 신회장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도 있지만 공(功)은 공대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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