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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시] 팥죽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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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웅 시인
  • 승인 2017.11.28 22:30
  • 댓글 0

동지 저녁, 어미는 손바닥 비벼 새알을 낳았다
그것을 쇠솥에 넣고 뭉근히 팥죽을 쑤었다
나무주걱 뒤로 스르르 뱀 같은 것이 뒤따르며  
새알을 물고 붉은 성간星間 사이로 숨어들었다 
솥 안에 처마 끝과 별과 그늘이 여닫히며 익어갔다  
부뚜막 뒤를 간질이며 싸락눈 사락사락 나리고
나는 어미 곁에 나긋이 새알을 혓바닥에 품고 
다시 이를 수 없는 따뜻하고 사소한 밤을 염려하였다 

명주실 몰래 묶어놓을 데 없을까 
뒤뜰 장독간 호리병처럼 서 있는 밤하늘을 보며    
먼먼 전설에 귀를 세운 것이다 
바람 드는 부엌문에 서서 공중을 두리번거리다 
하얀 마침표 하나 눈동자에 떨어져 그만 놓쳐버린 집 
어느 동짓날 팥죽 한 그릇 받고 사소한 것을 쓰느니 
대문간이며 담장이며 낮은 기와로 번지던 붉은 실핏줄들 
따뜻한 여러 마리 새들이 호록호록 태어나던 그 손

 

박지웅 시인

◆ 詩이야기 : 동지 때가 되면 식구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새알심을 둥글게 빚었다. 두 손바닥으로 주무르고 빙글빙글 돌려서 빚은 새하얀 새알심을 하나둘 상 위에 놓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새알심을 만들다가 지겨워진 아이들은 밀가루 반죽으로 꽃과 별과 강아지를 만들기도 했다. 깊고 깊은 겨울밤 어느 둥지에서 우리가 나누던 이야기는 지극히 사소했고 침묵조차 다정했다. 솥에서 올라온 수증기가 부엌 천정을 지나 방 안으로 스며들면 우리는 코를 킁킁거리며 한 그릇 팥죽을 기다렸다. 그 식구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손바닥에서 태어나던 맛있는 이야기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겨울날, 가만히 손바닥을 펴본다. 내 손에서 멀어진 당신들의 이름을 적고 가만히 쥐어본다.


◆ 약력 : 2004년 ‘시와사상’ 신인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너의 반은 꽃이다」,「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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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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