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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칼럼] 로베스피에르의 비극적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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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호 변호사
  • 승인 2017.11.28 22:30
  • 댓글 0

신분상승 대신 변호사의 길 선택한 시골 청년
평민 대표로 프랑스 혁명 주도해 권력 잡았지만
공포정치 자행해 민심 잃고 처형되는 최후 맞아

 

이민호 변호사

작년 여름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며 콩코르드 광장을 찾아 그의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로베스피에르. 그는 양심적인 시골 변호사였다. 학업을 마치고 그는 검사가 될 수 있었지만 주변의 기대와는 달리 시골 변두리의 변호사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그 길은 험난한 길이었다. 귀족이 아니었던 그는 공직자인 검사의 길이 아닌 변호사의 길을 택한 이상 서민으로서의 삶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은 그랬다. 불우한 환경이었지만 학창시절 그는 루이 16세가 학교를 방문할 당시에는 환영사를 읽는 학생 대표로 뽑힐 정도로 좋은 성적을 내던 영특한 아이였다. 환영사를 읽으면서 왕을 접견한 것은 한때 그의 가장 큰 영광이자 자랑이었다.


그랬던 그를 변하게 한 것은 못나가는 시골 변호사로서 몸소 체험한 국민들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제1신분인 성직자, 제2신분인 귀족이 합쳐도 40만명을 간신히 웃돌고 있었던 프랑스에서 나머지 2,700만명의 평민들은 무거운 세금과 가난의 도탄 속에 빠져 있었다. 프랑스의 구 체제인 앙시앙 레짐에는 출구가 없었던 것이다. 


역사적 사건은 우연과 필연의 절묘한 조합인 경우가 많다. 올 것은 오고야 마는 법이다. 과거의 영광에만 심취해 돈을 물 쓰듯 하다 보니 탕진된 국가재정 문제가 왕에게는 시급한 현안이 됐다. 루이 16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직자와 귀족, 평민대표로 구성된 삼부회 소집을 생각해냈다.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판 것이다. 마침 로베스피에르는 제3신분인 평민의 대표로 참석하게 됐고 이것이 그의 정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왕의 기대와는 달리 삼부회는 평민대표들이 귀족과 성직자들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도구가 됐다. 왕은 삼부회를 해산했지만 평민대표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국민의회를 결성해 끝까지 목소리를 내기로 결의한 것이다. 그러나 왕은 무력으로 국민의회 해산을 시도했고 이에 격분한 시민들은 무기창고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에 이르면서 나라는 혁명의 불길에 휩싸이게 됐다. 이 과정에서 로베스피에르가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 지롱드당과는 달리 로베스피에르의 자코뱅당은 급진적이고 비상한 사회변혁 없이는 미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갑론을박으로 시간은 흐르고 시간은 왕의 편이었다. 
왕은 좀 기다릴 줄 알아야 했다. 참을성 없는 왕과 왕비는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려다가 잡혀 민심에 불을 질렀고, 정세는 급변해 급진파인 자코뱅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 2만여 명의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과 왕비의 목을 잘라버렸다. 


이제 혁명은 외부를 향하게 됐다. 프랑스는 똘똘 뭉쳤고 이 와중에 국내 정치는 비상통치기구인 공안위원회의 독재가 허용되는 초법적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공안위원회를 접수한 로베스피에르는 정적을 모두 숙청하고 공포정치의 서막을 열어 비상한 상황에는 비상한 조치가 허용돼야 한다는 논리로 1년 동안 광장에서 1만 7,000명의 목을 잘랐고, 반대편에 선 25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학살했다. 그러나 가혹한 정치에 냉담해진 민심은 로베스피에르에 등을 돌렸고, 단두대는 그의 목도 잘라버렸다. 


그가 지향한 방향은 옳았다. 구시대의 모순은 개선이 아니라 혁명적 조치가 아니고서는 단절될 수 없었고 그의 정책이 처음에는 민심의 지지를 얻었던 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속도였다. 필자는 그 많은 피, 그 많은 전쟁, 그 많은 고통, 그리고 순수하고 양심적이었던 그의 몰락을 애통해하며 콩코르드 광장을 내리쬐는 여름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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