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5월부터 발간된 『새마을』잡지가 눈길을 끌었다. 문화공보부에서 제작하여 전국 모든 농촌 마을에 배포된 이 잡지는 한국사에서 거의 최초로 농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새마을』에서는 매호마다 ‘이달의 새마을 지도자’라는 코너를 통해 10여 명의 새마을 지도자를 소개했다. 새마을 운동은 농민들의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를 자극하여 농촌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일부에서 외화내빈(外華內貧)이 드러나기도 해 불길처럼 타오르는 듯 하다 때로는 배척 받기도 했다.

새마을 운동의 정치적 기능이 강화되면서 농촌 새마을 운동도 ‘정치적 시늉’의 요소를 보이는 등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그런 문제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농민들이 많았다. 농민들의 정서는 경제나 농업 정책 차원 외에 ‘정부가 우리를 인간적으로 대접해 준다’는 자존감이 크게 작용했다. 

새마을 운동 관련 통계는 워낙 엄청나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든다. 1970년대 초 새마을 운동이 확대되면서 농촌에서 주민이 참여하는 모든 사업에 경쟁적으로 ‘새마을’이라는 형용사가 붙어 그만큼 새마을 관련 통계가 과대 평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11월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등 일부 국가 정상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개발도상국 새마을 운동 지원 사업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전(前) 정부 사업이라도 성과가 있다면 지속적으로 추진 하도록 여건을 조성해 달라”고 지시했다.

덕분에 현 정부가 대폭 삭감을 예고했던 내년도 ‘새마을 ODA(공적개발원조) 예산’이 살아났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짠 229억원보다 더 늘어 251억원이 제출 됐다. 새정부 외교부와 한국국제협력단은 ‘새마을’이란 말이 들어간 사업을 모두 없애려 했다. 죽다 살아난 ‘새마을’, 그 생명력이 끈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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