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재해 막기 앞장섬과 동시에
당연시 되고 있는 것들 다시 되짚어봐야
미래세대에게 울산 안전한 고향 됐으면

 

 

김중국
은성유치원장

필자의 고향은 울산이다. 그것도 조선시대부터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본영이 있었던 병영이다. 어릴 때 기억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동천은 온통 금모래가 펼쳐진 백사장 가운데로 맑은 냇가가 흐르고 있다. 모래를 파면 금가루가 동동 뜨는 물이 배어나고 그 물을 마시던 모습,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서 전학 와 한 학기 정도 매일 동천에서 함께 놀았던 친구가 다시 서울로 떠난 후 참을 수 없는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주었던 곳. 그곳이 필자 기억 속의 동천이다. 동네 친구들과 학교를 마치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천에 모여서 검은 고무신으로 기차놀이와 공놀이에 해 저무는 줄 몰랐던 동천에 대한 추억은 오늘의 내가 살아가는 큰 힘이 되는 원천이라 생각한다. 그 동천은 지천명을 넘긴 오늘도 나와 내 가족의 삶의 터전이다.  

작년 경주에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쉰 중반이 된 지금까지 지진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 알고 살아왔든 나에게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요동치는 경험은 공포 그 자체였다. 무기력했다.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안전한 곳을 찾아 피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여진에 머릿속이 멍해지는 경험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여진은 계속됐지만 공포감을 줄 정도의 지진은 없었다. 서서히 뇌리에서 지진이 잊혀져가고 있었는데 다시 지진이 왔다. 이번엔 포항에서 5.4의 규모였으며 작년의 기억을 온 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연일 언론에선 원인과 향후 예상을 분석하고 발표했다. 그런데 많은 지진단층에 울산단층이 있으며 지진발생 시 위험의 정도가 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 아름다운 동천이 지진단층이라니.. 내 삶의 뿌리이자 힘의 원천인 동천이...

울산은 주위에 원전이 밀집 돼 있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다. 경북 월성과 울진, 그리고 기장의 고리원전 등 원전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우리나라가 지진에 안전한 지역이란 논리가 이런 현상을 초래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시간을 좀 더 과거로 돌려보면 이런 주장이 너무나 터무니없음을 알 수 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 이후 조선까지 우리나라는 지진 발생이 빈번했으며 울산도 다수 언급 돼 있다. 역사적으로 울산은 결코 원전 안전지역이 아니란 것이다. 국가의 중요한 결정이 이리 허술하다니.

최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신고리원전 5·6호기의 건설 중단 문제로 한 동안 매우 시끄러웠다.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국 공사재개로 결정이 났다. 삶의 터전에 대한 안전보다 경제적인 상황이 우선시 된 결과라 본다. 미래세대의 안전보다 현재 세대의 불편함을 더 중요시 한 결과이다. 문제는 이 지역의 정치인들이 정부의 탈 원전 정책의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답답할 노릇이다.   

필자는 쉰의 나이에 본 늦둥이가 있다. 이제 다섯 살이다. 그리고 필자가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비슷한 나이인 140여명의 유아들과 함께 생활한다. 이번 지진에도 평소 훈련한 대로 대피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살아갈 울산이 지진으로 인해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면 우울해진다. 지진의 위험뿐 아니라 그로 인한 2차, 3차의 위험요인이 도처에 깔려있는 곳. 그곳이 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곳이라니..

이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여왔던 것들을 다시 검토해보아야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을 행복이라 했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경제적 성과의 획득이 인간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와 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의 유래가 없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전보다 사람들이 더 행복해졌다는 자료는 없다. 아니 구체적인 수치로 보면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결코 높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히려 경제적 수치가 절대적으로 낮은 나라의 국민들이 행복지수가 더 높게 나타난다. 뭔가 방향이 잘못되어가는 것 같다.    

필자의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인 울산은 아름다운 낙원이다. 경제적으론 뭔가 부족했지만 평온하고 따뜻한 자연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온화하고 여유로 왔다. 필자는 이제 고향을 떠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더라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로 인해 더 큰 재앙이 오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쉰둥이 아이와 그 세대들에게 울산은 안전하고 편안한 고향이자 삶의 버팀목이 되는 곳으로 남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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