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예루샬라임’에서 비롯됐다. ‘예루’는 슈메르어로 ‘토대’ 또는 ‘지역’을 말하고, ‘샬라임’은 평화를 뜻하는 ‘샬롬’과 뿌리가 같다. 그러나 기원전 997년 이스라엘 왕 다윗이 점령한 이 땅의 역사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다윗의 아들이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다는 솔로몬이 동예루살렘에 ‘템플마운트(성정산)’를 세우면서 이곳은 유대인들의 성지(聖地)가 됐다.

하지만 솔로몬이 죽은 뒤 예루살렘은 분열과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유대인들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총 52차례 공격을 받았고, 23차례 포위됐으며, 2차례 완전 파괴됐다. 이곳을 둘러싼 점령과 탈환은 44차례나 반복됐다.

특히 서기 7세기 이슬람교가 태동하면서 예루살렘은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그렇다 보니 면적 0.9㎢에 불과한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에 3대 종교의 성지가 모여 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예루살렘은 오스만 터키 지배하에 있었다. 영국 정부가 위임 통치중 1917년 예루살렘이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하는 ‘밸 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유대인들로부터 전쟁 자금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이후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1947년 유엔은 예루살렘을 국제법상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으로 선포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도시는 동예루살렘(요르단령)과 서예루살렘(이스라엘령)으로 분리됐다. 그러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전체를 수도로 천명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 발표하면서 또 ‘중동의 화약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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