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영 시인·비평가

인간이 권력에 눈멀때 정화해주는 ‘시(詩)’
정치는 순간이지만 예술은 영원한 존재
시 홀대하는 지도자는 부패 드러내는 셈

 

김종삼 시인의 ‘장편2’는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로 짧은 시이다. 

장편(掌篇)은 손바닥만 한, 아주 짧은 작품이란 뜻으로, 이 시는 일제 강점기 거지 소녀와 맹인 아버지의 ‘고단하지만 의연한 삶’이 주제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11월 27일 취임사에서 이 ‘장편2’를 낭독해 화제다. 그가 ‘장편2’를 낭독한 것은 지난 2012년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 때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이진성 헌재소장은 이 시를 낭독한 이유를, “헌재의 주인은 고단한 삶이지만, 의연하게 살아가시는 우리 국민이다”라며 “우리는 헌재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이 기관을 맡겨주신 국민을, 이롭게 하여드릴 의무가 있다. 그 분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고, 눈물을 닦아드릴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지도자가 시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뜻을 말한 예가 드물어, 이 헌재소장의 행위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충격은 지도자 개인의 품격 문제와 더불어 시와 권력의 관계를 꿰뚫은 통찰력 때문이다. 

시와 권력의 관계에서 시를 포함한 예술의 가치를 우선시 한 사람으로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들 수 있다.

케네디는 그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를 낭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시인의 추모 연설에서, “권력이 인간을 오만으로 몰고 갈 때 詩는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줍니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 영역을 좁힐 때 詩는 인간 존재의 풍요와 다양성을 일깨워줍니다. 권력이 부패할 때 詩는 정화해줍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구절은「케네디 어록」첫 페이지에 기록돼 있고, 이 연설은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기 한달 전인 1963년 10월 27일 애머스트 대학에서 한 것으로 미국사회에서 예술의 가치를 말한 기념비적 연설로 평가받고 있다. 

시는 권력도 돈도 되지 않는 언어예술이다. 시를 비롯한 예술은 정치처럼 선전의 형식이 아니라 진리와 미의 형식이다. 정치가 자본과 권력에 의해 움직인다면, 예술은 자유와 평화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시가 사회를 비판할 때는 권력이 오만해지고 부패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케네디는 시를 비롯한 예술의 임무를 경멸하는 나라는 프로스트의 시를 빌려,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볼 것도 없고, 희망을 가지고 바라볼 것도 없는 운명”을 맞이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니까 권력을 우선시 하면서 시를 홀대하거나 무시하는 지도자는 오만하며 자기기만에 빠져 부패해 가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 된다. 권력보다는 시의 가치와 기능을 높게 평가한 케네디는 어떤 자리에서 문인들이 그를 상석에 앉기를 권유하자, “정치는 순간적이고 문학은 영원한 것인데, 어찌 순간적인 것이 영원한 것보다 윗자리에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간과 영원은 시와 권력의 관계를 명철하게 나타낸 말이다. 

  이진성 헌재소장의 김종삼 시를 통해 ‘고단하지만 의연하게 사는 삶’에 대한 배려와 지도자의 임무에 대한 성찰은 권력은 오만하지 않고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국가와 국민에게 공공의 이익을 가져준다는 통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이러해야 한다면, 시를 쓰는 시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지난 11월 22일 인사청문회 때 이 헌재소장이 낭독한 김종삼 시인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를 인용함으로써 이 물음에 답한다. 

“…(전략)…/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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