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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칼럼] 12월의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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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하 시인
  • 승인 2017.12.18 22:30
  • 댓글 0

라디오로 많은 그리움 달랬을 아버지
세월이 흐른뒤에야 그의 마음 깨달아
아버지 그림자 밟으며 올 한해 마무리 

 

이강하 시인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이면 그동안 자신이 했던 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직장과 가정 그리고 학교에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했는지. 아니면 그 반대로 엉망이었는지. 그렇다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달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송이 들리면 자연스레 몸 어딘가가 흔들린다.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다. 다가오는 새해를 어떻게 맞이할까. 어떤 계획을 세워볼까. 새해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고 싶다고 어제보다는 즐겁고 그제보다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새해의 ‘다짐 목록’을 작성하기도 하리라.

너무 많은 모임 소식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차마 어쩌지 못하고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하리라. 어느 성격 좋은 사람은 건강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서 감당할 수 없는 약속을 정하고 만다. 결국 지친 몸은 탈이 나서 병원을 찾게 되고 만나서 기뻤던 첫 느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불안정한 내일이 되기 쉽다. 그래도 12월이니까. 한해의 마무리를 잘해야 건강한 내가 되어야 다음 날의 출발도 좋으니까.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리듬에 맞춰 스케줄 조절을 잘 해야 한다. 12월에는 만나야할 사람도 많고 가야할 곳도 많고 안타까운 소식도 많고 축하할 일도 많다. 그러나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눈이 너무 오지 않아서 서로의 엇갈린 생각들이 서로 간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추억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방패연을 떠올리고 눈썰매를 떠올리고 군불을 떠올리고 팥죽을 떠올리고 친구를 떠올리고 형제를 떠올리고 부모님을 떠올리고.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가 생각난다.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1학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집에 도착했는데 어머님은 한쪽 아궁에는 군불을 때고 계셨다. 다른 한쪽 백솥에는 팥죽을 끓이고 계셨는데 아마 그날이 동짓날이었나 보다. 바람이 얼마나 매서웠는지 얼굴과 두 손이 얼음 같았다. 어머님은 필자의 얼굴과 손을 쓰다듬으며 아궁이 앞에 앉게 했다. 이른 저녁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늘 그랬듯이 미국 언니가 놓고 간 라디오 소리에 취해 계셨다. “막내야, 라디오를 들으면 세상을 다 알게 되는 것 같아. 오늘도 아버지는 라디오가 좋구나.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다음 날 계획이 나오고 그 다음 날 계획도 나와” 라고 말씀하시며 씁쓸하게 웃으셨다. 아버지께는 라디오가 그냥 라디오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그만큼 라디오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뒤늦게야 알아채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때 일로 필자는 라디오를 듣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아버지처럼 매일매일 라디오가 좋고 아침에 눈을 떠서 라디오를 틀지 않으면 아침이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가 바쁘게 외출을 하실 때도 라디오를 꺼지지 않았다. 필자는 아버지의 방에 엎드려 편지를 쓰거나 친구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었다. 지금 그때를 되돌아보면 아버지께서는 일부러 자리를 피해 주셨던 것이다. 필자의 공부방은 막내오빠가 쓰던 작은 방이었는데 웃풍이 있어서 겨울이 되면 너무 추웠다. 군불이 작은 방까지 전달되려면 한참 시간이 걸렸으므로 잠시 외출을 하신 것이었다. 바쁜 일도 없으시면서 바쁜 척 마을회관으로 달려가시곤 하셨던 것이다. 눈이 펄펄 내리는데. 

참 철없던 그 아이! 그렇지만 어쩌랴. 아버지가 그리하셨던 것처럼 지금 내가 아버지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이들에게 냉정하지 못한 것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또 이렇게 당당하면서도 여린 골목까지 사랑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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