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삶이 마음 속 생활문화로 자리 잡아
극단적인 생각은 포경문화 사라지게 할수도
문화·예술은 조급하게 성과 기대해선 안돼

 

이춘실 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

‘문화’라는 용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문화의 사전적 의미는 “자연 상태의 사물에 인간의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을 말한다. 이를 광의(廣義)의 개념으로 보면 문화란 자연에 대립되는 말로 인류가 진화하면서 이뤄낸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결국 문화란 우리가 만들어낸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루어진 지난 과거의 축척된 산물인 셈이다. 

우리는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아직도 곳곳에서 눈에 익은 풍경을 볼 수 있다. 허술한 블록담장과 삐걱거리는 나무대문, 까치밥 홍시를 달고 담장 넘어 가지를 걸치고 있는 감나무 등. 왠지 우리들에게 넉넉한 마음과 고유의 멋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왜 이런 풍경들이 우리에게 정겨움을 주는 것일까? 오랜 시간 살아온 삶들이 우리 마음속에 생활문화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구대암각화는 우리의 조상들이 그들의 일상을 바위에 새긴 살아있는 역사그림책이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 고래다. 고래잡이의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포경선의 높은 망루에서 망원경으로 고래를 발견하기 위해 먼 바다를 응시하는 선원들의 모습과 포경포를 잡고 바다를 응시하는 포수들의 모습을 사진이나, 영화 속에서 본다면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대의 고래잡이는 삶을 위한 모험이자 목숨을 건 생존투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이어져온 포경문화도 무분별한 고래잡이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포경금지로 이어졌고 이는 부촌이었던 한 어촌마을 장생포를 쇠락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듯이 포경문화도 분명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을 것이다. 좋은 것은 더욱 발전시키고, 잘못된 것은 되풀이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친 극단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우리 포경문화의 흔적마저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일상의 문화생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이 마음 놓고 작품 활동에 전념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인프라를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문화예술인들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 일반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저마다의 예술혼과 열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여정은 매우 힘들고도 험한 길이기에 존경을 받고 또 그들의 작품이 후세에 빛나도록 최소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지원보다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정책을 만들어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문화예술 토양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문화예술인들도 자신들의 분야만이 최고가 아니라 각 장르를 서로 아우르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 묵묵히 정도를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그 빛을 발하는 날이 올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화적 자산을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생활에서 기본을 지키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 기본을 지키는 것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고 본다. 축구, 야구, 배구 등 구기선수들이 볼을 다루는 현란한 솜씨만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체력 단련에 상당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비단 스포츠뿐만 아니다. 우리가 지금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그렇다. 간단한 교통신호 지키기, 차선 지키기, 과도한 추월 등 거리질서에서 기본만 지켜도 훌륭한 교통문화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고 후세에 이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이를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서두르고 조급하게 그 성과를 기대해서도 곤란하다. 우리 생활 속에 녹아내린 일상들이 쌓이고 쌓여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미국 사상가 에머슨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고 했다. 평범한 갑남을녀인 우리들이 기본에 충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우리의 일상이 훌륭한 문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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