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입마(走火入魔). 심리적인 원인 등으로 인해 몸 속의 기가 뒤틀려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무협지(武俠誌)를 읽다보면 주인공이 불꽃 속같은 주화입마에 빠지는 장면이 나온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서 새빨갛게 피어오르는 불꽃을 어린아이의 감동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은 그 무슨 신성하고 신령스런 물건 같다. (중략)…좀 있으면 목욕실에는 자욱하게 김이 오른다. 안개 깊은 바다의 복판에 잠겼다는 듯이 동화의 감정으로 마음을 장식하면서 목욕물에 전신을 깊숙이 잠글 때 바로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 물과 불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생명력의 근원이 된다.

그런데 불은 마치 피묻은 살을 맛있게 잘라 먹은 요마(妖魔)의 혓바닥처럼 8층 건물을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를 보면 삶과 죽음을 가른 것은 비상구였다. 비상구 입구를 막아 탈출이 불가능했다. 화재 초기 이른바 골든 타임 때 비상구 탈출은 생사(生死)를 가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초기 대피에 실패했다면 신속한 구조가 뒤따라야 했다. 하지만 제때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벽체를 없애고 기둥만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1층 필로티 구조의 건물은 불을 지피는 아궁이 역할을 했다. 필로티 건물은 출입구로 산소가 빨려들듯이 들어오기 때문에 거대한 아궁이로 변했다. 불구덩이에서 발목을 잡는 아비규환이 따로 있겠는가.

가연성 외장재, 불법주차로 소방차 진입 지연 등은 대형화재 사고 때마다 지적되는 문제들이다. 수십층도 아니고 8층 건물에서 난 화재로 29명의 인명피해를 낸 참사(慘事)는 뜻밖이었다. 방재(防災)관리에서부터 구조작업에 이르기까지 비전문가가 봐도 한심한 인재(人災)임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시각 우리는 거대한 불의 아궁이에서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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