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연대가 효율적 생존법, ‘무관용의 시대’ 끝내야

 

박하늬 작가 作 ‘사진찍개’
김병길 주필

‘앞만 보며 달려왔어요/뒤를 볼 겨를이 없었어요/누가 쫓아오고 있는 것처럼/그림자를 볼 여유가 없었어요 (중략)…앞을 보면/개떼처럼 몰려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뒤에 있어서/어디로 가는 길인지 모를 때가 많았어요 (중략)…’(58년 개띠 시인 오은의 ‘58년 개띠’) 

정확하게는 음력으로 말해야 맞지만 2018년 1월 1일(음력 11월 15일)로 ‘붉은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을 보내고 ‘황금개(戌) 띠 해’ 무술년(戊戌年)을 맞았다고 한다.

지난해의 고단함은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라는 상투어조차 뛰어넘은 한해였다. 우리는 길을 잃은 뒤에야,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놓쳐버린 생의 모든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헛된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닐까.

난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으나 우리는 혼란을 선택했다. 그래서 때로는 법과 원칙이 무시되고 광장의 함성이 제도를 압도했다. ‘무관용의 시대’였다. 내가 정의요, 내가 가리키는 곳이 바른길이라며 반대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좋든 싫든 이제 새해 무술년에 올라섰으니 희망을 꿈꿀 수 밖에 없다. 듣기 좋으라고, 혹은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하는 소리인진 모르겠으나 아직 ‘황금 개’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만 개는 선사시대부터 인간과 가깝게 살아온 친근한 동물이다. 서양에서 개(犬)는 하늘에서 가장 밝은 시리우스(천랑성)을 상징하고, 땅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신전(神殿), 혹은 종묘(宗廟)를 지키는 충직하고 신성한 동물이다. 

인류학자 팻 시프먼 교수는 ‘침입자들(The invaders)’에서 현생 인류를 침입종(侵入種·invasive species)으로 규정한다. 수십만 년간 유럽에서 잘 살던 ‘자생종’ 네안데르탈인은 ‘침입종’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면서 멸종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 요인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최상위 포식자끼리의 동맹이라 할 수 있는 ‘늑대와의 공존’이다.

늑대에서 개로 탈바꿈해 가는 관점으로 보이는 이 특이한 집단에 ‘늑대-개’라는 이름을 붙였다. 늑대-개는 인간의 조력자로서 사냥 수확을 무려 56%나 증가시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늑대-개가 다른 포식자들로부터 사냥 수확물을 지키고,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가축화는 언제나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며 양쪽 모두에게 이로운 협약이다. 개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과의 동맹은 다른 육식 동물과의 경쟁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다.

현생 인류는 개가 의외로 순종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개와 함께 사냥에 나섰다. 인간이 가지지 못한 예민한 후각과,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어 파트너로 제격이었다. 개가 먹이를 공격하는 동안 인류는 창을 던져 원거리에서 공격했다. 물론 사냥이 끝나면 개와 먹이를 나눴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들판을 달리며 거대한 동물을 사냥하던 늑대의 후손인 개가 어떻게 소파에 앉아 꼬리를 흔들며 사료를 받아먹는 존재가 되었을까. 한편에서는 고대 인류가 어린 늑대를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다는 가설과 굶주린 늑대가 스스로 인간을 따르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아니면 개의 가축화는 특정 늑대의 유전병으로 시작했을 수도 있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누구나 잘 따라 ‘사람을 사랑하는 병’이라 불리는 ‘윌리엄스 증후군’의 원인과 동일한 유전적 변화가 최근-늑대와는 다르게- 개에서만 발견되기도 했다.

“우리가 저녁을 먹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 때문”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일갈처럼 들린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잘 살펴보면 이기심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은 단순한 생존 경쟁보다 협력과 연대가 효율적인 생존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모른다.

비교는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양손에 떡 하나씩을 쥐고 그 둘을 비교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하지만 비교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다른 얘기다. 내가 큰 떡을 먹기 위한 비교는 욕심이지만, 떡을 골고루 나눠주기 위한 비교는 지혜가 아닐까.

흔히들 미래를 ‘오리무중’ 같다고 한다. 좌표와 방향은 상실한 채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아서다. 기술은 거침없이 발전하고 생활 환경은 날마다 급변하는 이 시대. 혹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이 앞으로의 미래라고 떠들어 대지만 실상은 지금 이 세계를 파악하는 것 조차 버겁다.

“평생을 달리지 않는 개가 있습니다. 발을 밟혀도 짓지 않는 개가 있습니다…” 시청자의 마음을 울린 한 TV광고가 있었다. 세상과 절박하게 공존하려는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현실을 함축한 메시지였다. 

많은 오해 중 하나는 안내견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어디로 갈 지 구체적인 지도는 안내견 파트너인 시각 장애인의 머리에 그려져 있다. 파트너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과정에서 위험 요소를 피해가게 해주는 것이 안내견의 역할이다. 

통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새해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해진다.

관람석 사이로 개들이 지나다니고 관객들은 음식을 먹으며 휘파람을 불어제친다. 18세기 빈 부르크극장 풍경이다. 웅성거리는 말소리와 소음을 뚫고 교향곡의 첫 음이 퍼지면 그제서야 청중은 공연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향곡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가장 거대한 음악으로 꼽히지만 교향곡의 시초는 오페라 공연 막이 오르기 직전에 연주된 짧은 서곡이었다.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짧지만 청중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선율을 들려 주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시간이야 값으로 매길 수 없고, 설령 값을 매긴다 하더라도 어느 시간이 더 헐하고 어느 시간이 더 값어치가 있겠는가. 그러나 한 해가 저무는 때의 한순간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묵은 한 해를 보냈다는 것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다는 의미다. 지난 것을 떠나 보낸 아쉬움과 새로운 것을 맞이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끝내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끝내기의 기술’에서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목표를 절반으로 줄여라, 목표 달성을 위해 중요하지 않은 일을 찾아내 제외하라, 그 목표에 재미를 더하라 등이다.

‘개의 해’를 맞아 한국 과학자들이 만든 강철 로봇개 ‘아이언 도그(iron dog)’들이 세상을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언 도그는 재난 현장이나 전장(戰場)에서 사람을 대신해 위험한 작업을 하고 적진을 정찰할 수 있다. 

견마지성(犬馬之誠), 상대방에게 바치는 정성을 말한다. ‘지금 당장 시작하라’ ‘시작이 반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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