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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칼럼] 나를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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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감우 시인
  • 승인 2018.01.11 22:30
  • 댓글 0

전날의 하루를 펼쳐 정돈하는 시간 ‘새벽’
고요와 침묵 속에서 내게 다가올 詩 기다려
올해엔 새벽이 있는 삶 만들어가기로 다짐

 

김감우 시인

다시 춥다. 눈이 다녀간 울산의 아침은 바람 끝이 매섭다. 하지만 신년 들어 며칠간 울산은 겨울 속의 봄날 같은 날씨였다. 겨울 속 보석 같은 햇살을 이미 경험했으니 앞으로 남은 한파를 견뎌내는 힘도 단단해졌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법! 신년의 화두로 나는 이 말을 나 자신에게 하고 싶다. 새해가 되면 나도 예외 없이 계획을 세운다. 올해 다짐은 속도와 속도 사이 새벽을 다시 심는 것이다. 홍길숙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빠르게 뛰어다니다 보니 나 자신과 조우하는 일이 없어졌다. 사유의 창에는 먼지가 잔뜩 끼었고 주변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왜 이렇게 사는가 라는 딜레마에 빠지곤 했다. 


책「나를 사랑하는 법」은 엔도 슈사쿠의 저서다. 그는 평생에 걸쳐 신과 구원의 문제, 즉 인간 내면에 이르는 신의 대답에 귀를 기울여 온 작가이다.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는 작품 「침묵」과 투병생활 속에서 쓴 그의 마지막 작품인 「깊은 강」은 생전 작가의의 뜻에 따라 사후 그의 관속에 넣어졌다고 한다. 나는 울산문인협회 한일교류전 행사에 참가하면서 그의 책들을 읽었다. 처음에는 행사를 위해서 그의 대표작 「침묵」을 읽고 그 작품을 토대로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를 관람했다. 바쁜 숙제처럼 접했던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의 삶속으로 엔도라는 작가와 등장인물들이 들어와 앉게 됐다. 그가 일생동안 매달렸던 존재와 근원에 관한 글들의 무거움과는 달리 「나를 사랑하는 법」은 진솔하고 명쾌한 작가의 답서 같았다. 


제1부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에 끌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엔도와 마주앉아 차를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허영심을 가져라, 경쟁자의 힘을 얻어 또 다른 경쟁자의 뒤에 따라 붙어라 등의 조언에 공감이 갔다. 정신적 혼돈과 균형 잡기의 반복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길이며 진정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말이었다. 목표지점에 끌어올려진 ‘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사랑하는 일, 그 일에 대한 선행조건은 나 자신의 내면과 깊이 조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월은 하루로 치면 새벽이라고 하겠다. 잠든 소리들이 조금씩 깨어나고 신성하다는 말이 온 우주를 껴안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새벽, 1월은 그런 신생의 이미지다. 


나는 새벽을 좋아한다. 특히 1월 새벽처럼 느리고 은근한 움직임을 좋아한다. 초고속으로 살았던 전날의 하루를, 그래서 급히 괄호 속에 묶어두고 창밖으로 내친 생각들을 다시 펼쳐 제자리에 정돈하는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인디안 달력에 1월을 표현한 말은 부족마다 다양하고 독특하다. 그중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이라고 한 아리카라 족의 표현을 좋아한다. 겨울철 새벽 이미지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고운 최치원의「새벽」이란 시를 보면 새벽에 관한 세심한 표현이 참으로 뛰어나다. ‘……/ 밤이 세상을 에워쌌다가/ 천지가 밝아오네/ 천리 밖까지 푸르고 아득하며/온 사방이 희미하네/……’


그렇다. 새벽의 이미지는 푸르고 아득한 것, 희미한 빛 속에 신비로운 소리로 천천히 걸어온다. 나는 새벽에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새벽은 말끔히 닦아놓은 어둠이 내미는 백지 한 장의 맛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 백지를 받아들고 미세한 소리들이 깨어나는 곳에서 내게로 오는 시 한 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처럼 새벽은 단순한 시간의 개념에 그치지 않고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된다. 나는 한때 새벽이라는 신비롭고 광활한 공간에 내가 잠시 세 들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만났을 고요와 침묵, 그들이 들었을 바람소리와, 그들이 흘렸을 눈물을 생각했다. 또한 내가 다녀간 이 새벽이란 별에 앞으로 사유의 둥지 틀고 살아갈 미래의 깨어 있을 시인들의 생각했다. 가슴 벅차고 뭉클한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새벽을 잊고 살았다. 일 사이로 동분서주 하다 보니 새벽이란 공간속에서 감잎차 한잔을 우려내지 못했다. 가끔 시골집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께서 새벽에 카톡을 보내신다. 팔순에 새로 알게 된 SNS의 세상에 푹 빠지신 어머니는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하신다. 건성건성 대화 사이에 일상을 끼워 넣다보면 톡은 형식으로 끝날 때가 많아 어머니는 다시 톡창을 여는 것을 망설이시곤 했다. 말 걸기를 망설이는 어머니의 자리에 또 다른 내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시를 기다리고 사유의 창을 활짝 열었던 새벽이란 공간에 있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이었다. 그가 서슴없이 말 걸기를 하는 일, 그것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이고 신년의 행복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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