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방어동 새마을금고 흉기 강도
오전 출근시간 전 기다렸다 범행… 1억1,000만원 탈취 도주
울산경찰, 신고받고 도주 경로 파악… 경남경찰 공조 검거
조선소 협력업체 실직자로 40대 가장… “사는 게 힘들어”
해당 금고 보안 엉망… 3중 보안장치 없고 중앙회 지침 어겨

18일 오전 8시께 울산 동구 방어동의 한 새마을금고에서 출근하는 직원을 흉기로 위협해 현금 약 1억1,000만원을 빼앗아 도주한 강도 김모씨가 범행 6시간 30분만에 경남 거제에서 검거돼 울산 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울산과 경남경찰이 공조를 통해 강도를 검거했으며, 돈은 모두 회수했다. 우성만 기자 smwoo@iusm.co.kr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가 은행 강도로 돌변했다. ‘완전범죄’를 꿈꿨던 대범한 강도는 허술하게도 곳곳에 단서들을 흘렸고, 6시간30분만에 덜미가 잡혔다.

◆계획… 또 계획=18일 오전 7시께 울산 동구 방어동. 김모(49)씨는 눈만 보이는 복면을 쓰고 집을 나섰다. 일을 찾아 지난해 7월 울산에 왔지만 6개월 만에 직장을 잃었다. 조선업 불황으로 동구의 조선소 협력업체였던 회사가 자금난으로 폐업했기 때문이다.

7시 10분께 김씨는 가장 가까운 동구 방어동 새마을금고로 향했다. 건물 뒤로 돌아 은행 뒷문 맞은편의 컨테이너 화장실에 몸을 숨겼다.

숨을 죽이고 기다리길 40여분. 7시 57분께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출납을 담당하는 은행 직원이 출근했다. 직원이 뒷문에 다가선 순간 김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위협했다. 놀라 얼어붙은 직원은 김씨가 시키는대로 순순히 움직였다.

은행에 들어선 김씨는 챙겨온 검정색 손가방에 현금을 담으라고 지시했다. 금고에 있던 지폐 1억1,000만원을 챙긴 김씨는 직원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청테이프로 온몸을 칭칭 감았다. 김씨가 모든 범행을 끝내고 은행을 벗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분여.

그는 근처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났다. 오전 8시 20분께 자신의 집에서 그랜저 승용차로 갈아탄 그는 거제로 향했다. 예전에 거제의 한 조선소에서 일했던 터라 익숙한 곳이었다. 거제 옥포동의 한 모텔에 다다른 그는 마음을 놓았다.

◆치밀한 계획?… 곳곳에 ‘허술함’이 흘렀다=김씨의 범행 계획은 나름 치밀했다. 범행 장소를 미리 물색했고, 범행 뒤 타고 달아날 오토바이도 준비해뒀다. CCTV에 찍힐까봐 오토바이 번호판도 청테이프로 가렸다. 경찰을 따돌리고 울산을 벗어나 거제의 한 모텔까지 3시간 여만에 도착한 그는 ‘완전 범죄’를 꿈꾸며 느긋하게 샤워를 즐겼다.

그러나 김씨는 범행 내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은행 직원의 몸을 감은 청테이프는 느슨했다. 이 직원은 김씨가 달아나자마자 청테이프를 스스로 풀고 경찰에 신고했다.

번호판을 가린 오토바이를 타고 김씨가 도착한 곳도 다름 아닌 자신의 집이었다. 은행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번호판에 붙어 있던 청테이프를 떼어버렸다. 짐을 챙겨 거제로 달아나면서 몰았던 승용차도 김씨 자신의 명의였다.

덕분에 경찰은 사건 발생 20여분 만에 오토바이를 발견했고, 김씨의 신원을 특정하는 것은 물론 도주 경로까지 파악했다. 경찰은 경남청에 공조수사를 요청했고, 오후 2시 12분께 모텔 주차장에서 김씨의 차량을 발견했다. 샤워 중이던 김씨는 현장을 급습한 경찰에 맥없이 제압당했다. 김씨는 훔친 돈을 한푼도 사용하지 못한 채 반나절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당황해하며 김씨가 남긴 첫마디는 “어떻게…” 였다.

울산 동부경찰서로 압송된 김씨는 범행 이유를 묻는 취재진을 향해 “사는 게 힘들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경찰은 김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보안 ‘엉망’ 새마을금고, 피해 키웠나= 사건이 발생한 동구 방어동 새마을금고의 보안 상태는 엉망이었다. 은행 뒷문에는 도어락이 설치돼 있는데, 별다른 보안장치 없이 비밀번호만 입력하도록 돼 있었다.

가장 기본 사항인 새마을금고 중앙회의 보안지침도 지켜지지 않았다. 새마을금고 중앙회 ‘현금 도난사고 예방 지침’에 따르면 은행 문을 열 때는 2명 이상 동행하도록 돼 있지만, 이날 영업 준비를 위해 출근한 직원은 한명뿐이었다.

한 직원이 은행 금고에서 현금을 꺼낼 수 있었다는 점 또한 허술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금융기관 금고는 보안상의 이유로 한명이 열 수 없도록 돼 있다. 세부적인 지침은 은행마다 다르지만, 보안과 관련된 사항은 여러 사람이 나눠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은행 관리자는 “은행 출입문과 금고 다이얼 번호, 금고 열쇠 등 삼중의 보안장치를 3명의 직원이 관리하고 있다”며 “직원 한 사람이 출근해서 은행 문을 열고 거액의 현금까지 꺼낼 수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울산지방경찰청은 이날 금융기관의 강도·도난·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종합대책 수립을 검토하고 있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