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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칼럼]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88올림픽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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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8.02.07 22:30
  • 댓글 0

소련·중국 등 서울올림픽 참가 발표
당황한 김정일 KAL기 폭파 지령
93년 울산서 폭파범 김현희 만날 기회

88년 봄 학생시위 ‘남북 단일팀’ 주장
판문점서 북한 학생대표 회담 시도
그때 주역들이 ‘평창올림픽’ 지휘 의혹 

 

김병길 주필

1987년 10월 7일 북한 김정일은 “세계 각국의 88서울올림픽 참가 신청 방해를 위해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하라”는 친필 공작 지령을 내렸다. 12월 16일 대통령 선거를 2주일여 앞둔 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5분경 대한항공 소속 858 보잉 707기가 미얀마 근해 안다만 해역에서 공중 폭발해 추락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 비행기 탑승객은 중동에서 귀국하던 근로자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인 승객 93명과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으로 115명이 참변을 당했다.


수사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 비행기에 한국 입국이 금지된 일본인 2명이 탑승했다는 동아일보 보도 이후 수사가 급진전 됐다. 문제의 두 남녀는 하치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라는 이름의 여권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들은 12월 1일 바레인에서 요르단으로 탈출하려다가 위조여권이 적발되어 붙잡혔다. 담배 필터에 숨겨 둔 독약 앰플을 깨문 남자는 즉사했지만, 여자는 바레인 여자 경찰이 치사량을 삼키기 전에 빼앗아 목숨을 건졌다.


그 여자는 26세의 북한 공작원 김현희였으며 죽은 남자는 부녀지간으로 위장한 공작원 김승일이었다. 이 사건은 소련에 이어 중국까지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기로 결정하자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느낀 북한이 기도한 사건이었던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하필이면 김현희가 서울로 이송된 날이 선거 하루 전인 12월 15일이었다. 


선거후 세간의 관심은 115명의 목숨에 대한 기억은 잊혀졌다. 언론은 김현희를 ‘신비의 여인’처럼 묘사했다. 가냘픈 그녀를 보호해 주겠다고 청혼하는 사내들까지 나타났다. 


1987년말 먼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김현희를 1993년 울산에서 마주앉아 볼 수 있었다. 당시 모 기관 주선으로 모처에서 몇몇 초청인사들과 함께 김현희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KAL기 테러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1988년 봄과 초여름을 뜨겁게 달군 88서울올림픽 남북공동개최와 통일운동이 뜻밖의 국면을 맞았다. 서울올림픽 공동개최는 서울대 총학생회장 후보 김중기와 유제석이 88년 3월 29일 ‘김일성대학 청년학생에게 드리는 공개 서한’을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공개서한에서 ‘민족화해를 위한 남북한 국토종단 순레 대행진’과 ‘민족단결을 위한 남북한 청년학생 체육대회’를 제안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언론은 뜻밖의 충격에 대서특필하기 시작했고 두 학생에게는 곧바로 수배령이 떨어졌다. 마침내 4월 4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위원회가 ‘서울대 총학생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학생들을 중심으로 남북교류와 통일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건설준비위원회의 지지성명이 발표되었고,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도 당면사업으로 승격시켰다.


88년 4월 16일 연세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한 국민대토론회’에서 ‘청년학생 조국통일 투쟁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7개 사회단체는 올림픽 공동개최 지지 결의문을 채택했다. 4월 20일 학생과 민주인사 등 약 3,000여 명이 참석해 ‘한반도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범국민 투쟁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서 11개 사회단체는 한반도 비핵지대화, 팀스피리트 훈련을 비롯한 군사훈련 중지, 휴전협정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 남북한 단일팀 구성, 자유로운 통일논의 및 남북한 각계각층의 교류 등을 촉구했다.


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내 가톨릭 교육관 3층 옥상에서 서울대생 조성만이 ‘양심수 석방’ ‘미국 축출’ ‘공동올림픽 개최’ 등을 촉구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할복 투신 자살했다. 조성만의 자살을 계기로 평민당 총재 김대중은 그동안 주장해온 ‘올림픽 남북공동개최’ 논의를 표면화 시켰다.


이같은 김대중의 주장에 대해 보수언론이 포문을 열었다. 김대중은 5월 21일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림픽 공동개최나 남북 정상회담을 공식 주장했거나 제의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5월 27일에는 67개 민주단체가 잇달아 남북학생회담 성사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88년 6월 9일, 6·10 남북학생회담 참가를 위해 전국에서 약 3만여 명의 학생들이 서울로 집결했다. 6월 10일 연세대에서 ‘6·10 민주화 투쟁 1주기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이 열렸다.


이날 학생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학생들의 판문점행을 결사적으로 막았다. 최루탄이 쏟아지는 거센 진압 속에 팔짱을 낀 채 아스팔트에 누워 “기어서라도 판문점에 가겠다”고 버텼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 북한측 학생 대표들은 판문점에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북 학생 판문점 회담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7월 4일 임진각까지 진행된 ‘통일 염원 범국민 대행진’을 고비로 올림픽 공동개최와 통일 투쟁은 일단 막을 내렸다.


뜨거운 논란 속에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울에서 제24회 올림픽이 열렸다. 이 대회에서 금 12, 은 10, 동 11개 등 33개의 메달을 따내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4위를 차지하는 대성과를 이루었다(중국은 9위, 일본은 14위). 스포츠 공화국으로 불렸던 5공 정권의 군사 작전식 스포츠 정책이 맺은 결실이다. 


제23회 평창 겨울올림픽이 내일 막을 올린다. 북한은 역대 최다인 22명의 선수와 응원단 등을 대거 파견했다. 논란 속에 여자 아이스하키는 남북단일팀이 됐다. 겨울올림픽을 맞은 정부의 대북한 태도는 굴욕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30년 전 친북 대학생들의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가 불길하게 떠오른다. 


30여 년간 북한은 얼마나 달라졌나? 핵과 미사일 이빨을 감추고 평화 공세를 벌이고 있지는 않나? 남에서는 30여 년전 ‘가자 북으로!’를 외쳤던 그들이 앞장서 북에 추파를 던지고 있지는 않나.


대구에서 살고 있다는 두 아이의 어머니 김현희는 6일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한반도기는 평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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