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 흐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 앞에 
올해도 즐거운 땀 흘릴 여유 주어지길
어김 없이 찾아올 따스한 봄 기다려져

 

 

장만석
울산대 교수·전 울산시 경제부시장

주말 농부. 공무원 퇴직 후 스스로 택한 게으른 직업(?) 중 하나다. 토·일요일 중 하루는 직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벌써 4년째다. 어깨 너머로 배우기도 하고, 울산농업기술센터 후배들에게 물어 보기도하고, 농촌진흥청 사이버 강의를 들어 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져 이런 저런 관심 가는 작물의 농사 지식도 습득하기도 했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흥미’야 말로 지식의 문을 여는 ‘열쇠’다. 

뭐, 거창한 것 같지만 실은 15평 정도의 텃밭이다. 충남에 있는 처갓집 뒤 켠 공터 중 일부를 불하(?) 받아 농사일을 해왔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요 백견(百見)이 불여일행(不如一行) (백번 물어보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하고, 백번 보는 것이 한번 행하는 것보다 못하다).’ 문외한들에게 꽤 ‘유식한척’해도 먹히는 이유다.   

텃밭을 해본 사람은 안다. ‘넘어야 할 조건’들이 만만찮다. 외톨이로는 곤란하다. 가족이 공감해줄 분위기가 아니면 수확물 처리조차 어렵게 된다. 그런 면에서 처가 쪽에 텃밭을 두는 것이 유리하다. 한 시간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그럼, 가는 길이 여행이 된다. 커피 마시는 운치도 즐기고, 인근에서 ‘온천욕’도 즐기고, 지역의 ‘맛 집’에서 한 끼를 즐길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다음으로는 안심하고 먹을 ‘친환경’ 재배다. 벌레들의 공격은 잘 방어해야 먹을 게 남는다. 떼로 공격당하면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다음은 게으름(?)의 극복이다. ‘1주1일’ 주말 농부니 제한된 시간에 파종에서 수확까지 혼자 해야 한다. 

지난해는 유기농 비료를 텃밭에 미리 듬뿍 주어서 면역보강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 벌레들이 좋아하지 않을 품종을 택했다. 정보를 종합한 결과 ‘상추’가 대표다. 4월에 15평 텃밭을 5등분하고, 이중 2등분에 ‘상추’씨를 심었다. 1곳은 ‘아욱’과 ‘근대’에 할당했다. 땅이 수분을 유지하게 물 뿌려 주는 것 하나만은 장인께 부탁했다. 5월에는 남은 2등분에 두 줄로 고추 열 댓 개를 심었다. 한 줄은 매운 ‘청양고추’, 나머지 한 줄에는 맵지 않는 ‘가지고추’를 심고, 밭 가장자리 둘레에는 ‘가지나무’ 열 댓 개를 한 줄로 심었다.  

중요한 것은 관리와 수확이다. 매주 잡초 제거에는 30분 투자. ‘참비름’처럼 먹을 수 있는 잡초는 남기고 먹을 수 없는 잡초만 후딱 제거하는 방법을 택했다. 묘하게도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벌레도 좋아한다. 참비름은 벌레의 떼 공격을 분산시키는 하나의 방편도 되었다.

그리고 수확에는 매주 2시간 정도 투자. 상추는 어른 손가락 1마디 정도 자랄 때 쯤 해서는 솎아 먹고, 어른 중지 2개 정도 자라면 ‘솎기’나 ‘잎 따기’ 대신 ‘베기’를 택했다. 중요한 것은 아랫동을 2cm 정도 남기도 칼로 윗부분만 베는 것이다. 소요시간 20분 이내. 이렇게 하면 다듬는 수고가 필요 없다. 그대로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면 한 주 내내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너무 조밀하다 싶으면 ‘베기’후 ‘속기’로 가면 된다. 신기하게도 강한 놈은 베어주면 두 셋 포기로 분화된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있다고들 하니 주변의 선물로도 그만이다. 

당연히 ‘아욱’이나 ‘근대’ 나물도 ‘베기’ 방식으로 봄에서 가을까지 즐겼다. 

‘청양고추’나 ‘가지고추’는 수확이 많은 반면, 벌레가 적다. ‘청양고추’는 저장성이 좋아 냉동해 두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다. ‘가지고추’는 ‘청양고추’ 옆이라서 그런지 약간은 달고 매운맛이 있어 좋다. 텃밭 둘레에 심은 ‘가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열린다. 최고의 식재료로 손색없다. 7월에는 ‘상추’자리에 ‘들깨’를 심어 잎을 따먹고, 9월 말에는 ‘열무’를 최대한 많이 심었다. 가을 채소로도 훌륭하지만 삶아서 냉동 보관하니 겨울철 최고의 먹거리 되었다. 

이만하면, 모 방송의 인기프로인 ‘자연인’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화합’과 ‘상생’은 소멸되고 ‘분리’와 ‘대결’만 난무했던 춘추전국시대의 ‘노자’처럼, 주말 하루라도 아예 세상을 등지고 ‘무위자연(無爲自然)’하며 ‘주말농부’로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자연은 어김이 없다. 이 추운 겨울도 금방 지나갈 거다. 다시  아카시아, 벚꽃, 이팝나무 꽃이 만발한 국도를, 김밥 한 덩어리와 따끈한 커피를 즐기며, 느릿느릿 달려가서 텃밭에서 땀 흘릴 봄날이 그리워질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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