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이 정상을 이기는 지금의 현실
상식 외면 땐 우리 사회는 제자리걸음
앞으로 전진 위해 현재의 작태 손봐야 

 

이규원
시인

며칠 전 필자는 얼굴에 생긴 낭종을 제거했다. 처음 진료를 받기 위해 피부과로 갔으나 흉터가 생길 수 있으니 성형외과로 가라고 했다. 

성형외과로 가니 피부과로 가라고 했고 피부과로 가니 또 성형외과로 가라고 했다. 물론 피부과에서는 부위가 얼굴이니만큼 흉터가 생길 수 있으니 성형외과로 가라고 했고 성형외과에선 돈 안 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예상했지만 그래도 역지사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동등한 인격이니 도덕적 주체로서의 인식이니 하는 논거 따위는 따지고 싶진 않았지만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울산에서 가장 유명한 성형외과를 찾았으나 의사가 부재중이라 했고 그럼 예약을 하겠다고 했더니 당황해하며 솔직히 여기선 이런 시술을 하지 않으니 외과로 가보라며 ㅇㅇ병원을 소개해 줬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 얼마나 비열한지는 알지만 방법이 없다는 핑계로 ㅇㅇ병원을 찾았다. ㅇㅇ병원은 초음파 촬영 후 입원, 전신마취를 통해 수술을 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실손의료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후의 진료 결과였다. 필자는 직장 일로 시간을 많이 비울 수 없다며 거절했다. 

다음 날 처치실 간이침대에 누워 약간 따끔거릴 정도의 부분마취를 한 후 단 몇 분 만에 시술을 끝냈지만 필자는 나대로 사이사이 치밀어 오르던 거친 말들을 흉터가 남지 않게 잘 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비상식적 진료 결과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병원의 슬픈 입장을 애써 이해하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눌러야만 하는 걸까? 피부과와 성형외과의 진부한 놀이는 결국 그 상식이라는 틀을 부술 수 없는 경계에 놓여있어 화는 나지만 달리 응징의 근거가 없다. 

그러나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권리를 오히려 병원에서 편취 목적으로 종용한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전신마취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본다면 어처구니없이 과도하지 않은가? 그리고 요즘 수면내시경 중에 사망하는 일도 있었지 않는가? 콩알만 한 낭종 하나 제거하자고 전신마취에 입원을 권하는 것을 보며 다만 이것뿐이겠는가?

필자는 등단 이후 16년 동안 각종 문예지를 통해 발표를 하면서 원고료를 받은 적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에서의 문학 활동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각종 잡지의 발표 지면을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출판사는 원고료를 1년 정기구독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출판사는 묵은 간행물을 보내주기도 했다. 또 어떤 출판사는 지면을 빌려주는 대신 상응하는 지원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은 이러한 현상들이 필자뿐만 아니라 이름께 나 알려진 작가들을 제외하면 다수의 문학인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가치를 인정받고 못 받고를 떠나 작품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해를 강요당해야만 할 것인가? 

상식이라는 것이 진리의 궤적을 살짝 빗겨 나 편의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결코 경시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본질을 따지기 이전에 통용을 위한 잣대이기도 하다는데 의의가 없으며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노동의 대가인 최저임금과도 같은 것이다. 

상식을 뛰어넘어 나아가지는 못할망정 상식을 벗어나 퇴보해선 안 될 것이다. 상식을 외면할 때 우리 사회는 미래가 아닌 현실로 돌아가는 길을 반복할 뿐이며 과연 우리는 그 상식의 뒤안길을 어슬렁거리며 스스로 제도화하는데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심사숙고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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