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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칼럼] 향곡(香谷) 선사의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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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영동 문수학당원장·철학박사
  • 승인 2018.02.18 22:30
  • 댓글 0

연일 이어지는 국정원장들의 구속행
세상 들고 놓는 권력도 결국 덧없어 
‘탐진치’ 보배 삼으면 추락하게 될 것

 

장영동 문수학당원장·철학박사

“스님, 이 계곡에는 향기가 나지 않는군요.”
“뭐라, 어디서 후라이 까고 있노. 잔소리 말고 퍼뜩 들어오라 마.”


울산 회야댐 석천리 별장과 묘관음사를 오가며 세상사를 다식 삼아 차를 마시던 HR과 다도9단 향곡 선사가 주고받던 다담 한 꼭지다. 


1973년 4월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윤필용 장군이 보안사령부에 체포된다. 박정희 대통령 유신선포 계엄령 하에 궁정동 한 식당에서 윤필용 수경사령관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식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형님, 각하가 더 늙기 전에 물러나시게 하고 후계자를 세워야 하잖아요.” “누굴 세우려고?” “형님이 있지 않습니까?”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일국에 2인자 정보부장이 은밀하게 수도경비사령관과 나눈 대화가 1인자에게 즉각 보고됐다. 윤필용 장군은 역적모의 주범으로 보안사령부로 끌려 가 된통 혼쭐이 나고 옷을 벗었다. 


며칠 뒤 이후락은 평소 고향에 오면 가끔 찾던 고리 원자력 마을 월내 철길 건너 왕대밭 속 묘관음사 향곡(香谷, 1912∼1978) 선사의 방문을 열고 날카로운 비수를 날려 보냈다. 뜻인즉 “소문난 도인이라더니 형편없는 중 아니냐?”는 투였다. 날아오는 칼에 맞고 쓰러질 향곡이 아니었다. “야 이 자슥아, 어디서 얄팍한 수로 구라를 쳐대느냐?” 헛소리 말고 고분고분 기고 들어와 차나 마시라는 응수였다. 선문답에 어느 정도 조예를 가진 이후락은 향곡의 법명을 빗대어 시비를 걸었고, 향곡 역시 지체 없이 그의 이름을 비꼬아 전광석화처럼 급소를 친 것이었다. 이후락(1924~2009)이 누구인가? 울산이 낳은 인물로 박정희 대통령의 아이돌이 아니던가. 그 역시 대인이었다. 벌떡 일어나 삼배를 올리며 “아이고 큰 스님, 법문 잘 받았습니다” 하고는 큰 사발때기로 차를 마셨다. 


그는 1972년 청산가리를 품고 김일성을 만나고 와 7·4남북공동성명으로 국민들로부터 환심을 받고 있던 대스타였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던가. 박통이 10·26 사건으로 사라지자 그 역시 손을 씻고 이천 도요지에서 차를 마시고 도자기를 구우며 조용히 지내다 세상을 떴다. 


연일 국정원장들의 구속행을 보니 빨대 대고 피 빨아 먹던 여름 모기보다 훨 못한 자리였는데 위세 떨었나 싶다. 세상을 들고 놓던 권력자는 권력 떨어진 날 감옥행이지만 먹물 입고 머리 깎은 도인들 중 만세를 휘날린 사부가 많다. 저네들처럼 힘 있는 자가 지옥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탐진치(貪瞋癡, 욕심·성냄·어리석음)를 보배로 삼았기 때문이었던가. 


향곡하면 성철이고 성철하면 향곡이다. 하지만 공부 앞에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었다.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는 완전히 달랐다. 두 사람이 이 문제로 박 터져라 싸운 당시 동영상 테이프를 돌려 보자. 


“오매일여(吾寐一如)의 경지란 없다.” “왜 없느냐. 니가 모를 뿐이제.” “오매일여는 양을 걸어놓고 개고기 파는 잡배들의 사기극이다.” “그럼, 니놈이나 개고기 처먹어라.” “뭐시, 이 중놈이?”


성철은 한 번 깨치면 수행이 필요 없다는 돈오돈수를 주장했고, 향곡은 비록 확철대오 했다 하더라도 끊임없는 수행정진으로 보림(保任)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법전(1926~2014) 선사의 증언이 이랬다. 


성철스님은 봉암사 결사를 시작하면서 월내 묘관음사에 있던 향곡스님을 불렀다. 어느 날 향곡스님이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왔다 갔다 하드니, 갑자기 성철 스님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무슨 이야기가 오가더니, 성철 스님의 멱살을 잡고 나와 대문 밖으로 때기장 치고는 문을 잠가버렸다. 성철 스님이 대문 밖에서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쌍욕을 해댔다. 한 참 뒤 두 사람이 성철스님 방으로 들어가 얘기를 주고받더니 함께 방문을 열고 나왔다. 향곡의 한 마디는 놀라웠다. “사자 새끼가 이제 눈을 떴다.” 


절친 향곡이 먼저 열반에 들자 성철은 이렇게 추도사를 읊었다. ‘슬프고 슬프다, 절집 수악한 큰 도적놈아(哀哀宗門大惡賊)/ 천상천하에 너 같은 놈 몇일런고(天上天下能幾人)/ 금생 업연 다하니 훨훨 털고 떠나구나(業緣已盡撒手去)/ 동쪽 집에 말이 되던 서쪽 집에 소가 되든 알아서 하시겠지(東家作馬西舍牛)/ 갑을병정무기경(甲乙丙丁戊己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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