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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칼럼] 2차대전, 런던 지하벙커 ‘처칠 워룸’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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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8.02.21 22:30
  • 댓글 0

‘호랑이 아가리 속 대화는 않겠다’
평화 위장 히틀러에 항복 않고
지하벙커에서 전쟁 지휘해 승리

대화·평화·민족끼리로 유혹하는
김정은, 내란 상황 남쪽 틀어쥐어
우리정부는 단호했던 처칠 배워야

 

군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무려 3수(三修) 끝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간신히 입학했다. 군인으로 인도와 아프리카 등에서 수많은 전쟁에 참여했지만, 군사 전술에도 뛰어나진 않았다. 그런 그가 대중의 주목을 끌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잘 썼기 때문이다.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낸 책이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에서 포로가 됐다가 운 좋게 탈출한 실화로 유명해졌다.


1874년 명문가 자제로 태어난 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영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헤쳐나간 인물로 지금도 추앙 받고 있다.  그의 총리 시절을 집중조명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촬영상·남우주연상·미술상을 비롯한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 개봉한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선 일부 ‘처칠팬’을 제외하고 모두가 외면해 흥행에 실패했다.


1908년 4월 영국 자유당 정부의 상무장관으로 첫 각료 생활을 시작한 당시, 33세의 윈스턴 처칠은 보수당의 보호 무역 주의에 ‘진보적 자유무역주의자’였다. 1910년 내무장관을 거친 처칠은 1911년 해군장관이 된 후 해군 조직을 정비하고 전함 등 전투력 증강에 앞장섰다. 처칠 덕분에 영국은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독일 해군을 물리칠 태세를 갖췄다. 그는 영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덕적인 비난을 감수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독일에 항복한 프랑스 비시 정부가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40년 6월 히틀러에게 함대를 넘겨주기로 결정하자 서슴 없이 격침시켰다. 프랑스 해군 1,200명의 생명을 앗았지만 옛친구 프랑스 함대가 영국에 함포를 들이대는 비극을 막았다.


1940년 11월 독일군이 영국 코번트리를 폭격할 것이라는 암호를 해독했지만 시민 희생을 각오하고 공습 경보를 내리지 않았다. 독일로부터 독일군의 암호를 풀 수 있다는 비밀을 숨기는 게 국익에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처칠 자신은 ‘가장 암울했던 시절’이라고 회고했지만 대다수 당시 영국인들은 처칠 총리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세계2차대전 초기 독일의 영국 침공 직전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평화’로 위장한 히틀러의 항복 조건 타협을 거부하고 영국을 끝내 항전으로 이끌었다는 지극히 영국적 ‘애국 영화’로 평가됐다. 


“전쟁에서 진 나라는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무릎을 꿇고 굴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그의 연설이 심금을 울린다.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처넣고 어떻게 호랑이와 대화를 하라고 하나”는 처칠의 부르짖음은 명대사였다.


지금 우리에게 가해지고 있는 전쟁의 위협과 이에 대처하는 우리 지도자와 국민의 심정적 상황은  묘하게도 영화와 역(逆)으로 비교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집권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평화-민족끼리’로 뭉쳐있다. 그러나 국민은 친북·반북으로 갈려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내란’ 상황이다. 진작 이를 간파한 김정은은 ‘내란’을 겪고 있는 남쪽을 틀어쥐고 미국을 원격 조종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동의 없이는 어떤 대북 무력 행사도 있을 수 없다’는 문재인 정부의 단호한 결의. 김정은은 한국을 방패 삼아 유엔의 대북 제재를 흔들고 있다. 동계올림픽 선수단과 음악단, 응원단을 남파해 국민을 홀리고 대통령을 평양으로 부르면서 한국에게는 ‘핵(核)’ 자도 못 꺼내게 했다. 한국만 손안에 쥐고 있으면 미국이 과감한 대북한 전선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김정은의 계산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2014년 영국 여행 때 런던에서는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애국심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런던 시가지에 보존돼 있는 전시 총리 집무실이자 전쟁지휘 지하벙커 ‘처칠 워룸(WAR ROOM)’은 2차대전 중 윈스턴 처칠의 활약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하 3층 전쟁상황실에는 총리 침실은 물론 각료 회의장, 전쟁상황보고·지휘실이 당시 그대로 밀랍으로 재현된 인물들과 함께 보존돼 있었다.


처칠은 전후 5년이 지난 1950년 12월 영국하원에서 “유화정책 자체는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있다”며 “국력이 약하거나 공포 때문이라면 소용도 없고 오히려 치명적이다. 하지만 강한 힘이 뒷받침 된다면 관대하고 고상하며, 평화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처칠이 지금 살아 있다면 최근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에 박수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강한 힘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잊지 않고 당부할 것이다.


처칠 전임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아돌프 히틀러에 유화 정책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어리석은 그는 결국 수백만 인류에게 유례없는 재앙을 불러오고 말았다.


독일군의 폭격에도 항복 않고 지하벙커에서 끝까지 항전한 처칠.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처넣고 어떻게 대화를 하라고 하나.” ‘평화’로 위장한 히틀러의 항복 조건 타협을 거부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을 우리 지도자는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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