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戰戰兢兢). 날마다 이어지고 있는 새로운 성추문 폭로에 지명된 유명인사들의 모습이다. 시 ‘괴물’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추문을 처음 세상에 알린 최영미 시인이 “반성은 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새로운 ‘고발장’을 내놨다.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라고 반문하며 고발장을 마무리했다.

교육부는 고은 시인의 작품이 실린 교과서를 전수(검정 중·고교 교과서) 조사한 결과 시인의 시(詩)·수필 등이 검정 교과서 11종에 실려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검정 교과서 출판사와 집필진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했다. 고은 시인의 작품 삭제 여부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전문적인 판단에 근거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학계와 문단에서는 문학 작품을 작가의 행적과 분리해 작품성만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때 친일 행적 논란에 휩싸였던 고(故) 서정주 시인의 작품은 문학성을 인정 받아 계속 교과서에 남아 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외워보려 했을 만큼 사랑 받았다. 국어 교과서는 그 자체가 훌륭한 읽을 거리이자 글쓰기 공부의 모범으로 여겨져 왔다. 이양하 ‘신록예찬’, 민태원 ‘청춘예찬’, 김진섭 ‘백설부’,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등을 읽으면서 그 시절 소년 소녀들은 인생을 깨쳤다. 

교과서에 글이 실리게 되면 그런 영예가 없다. 시인 정일근은 2001년 시 ‘유리창 청소’가 중학 국어 교과서에 실린 뒤 많을 땐 한 해 서른번쯤 강연을 다녔다고 했다. 누군가의 글 또는 누군가에 대한 글을 교과서에 싣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일그러진 선생님’들이 어떤 비호 속에서 괴물로 커졌으며 그 괴물의 글을 놓고 교과서까지 고민해야 하니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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