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시인·인문학연구원

어떤 기업의 최고 경영자에게 독서 방식을 들어 본적이 있다. 그는 경영학을 전공한 경영전문인으로서 성공한 기업인 인데, 그가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경영학 서적보다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사업을 구상하고 경영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경영을 잘 해야 한다고 경영서적만 읽는다면 세상 보는 관점도 좁을 수밖에 없으며, 전문가에게 생기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 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복잡하고 무거운 날에는 경전을 읽고, 밝고 편안한 날에는 역사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즉, 강일독경유일독사(剛日讀經柔日讀史)을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 말은 불과 몇 해 전에 타계한 근대 동양사상의 대가이자 중국 학풍에 ‘선생님’으로 불리 우는 남회근 선생이, 청나라 말 태평천국의 난을 역성혁명으로 진압하여 풍전등화 같은 청조의 위기를 구해낸 군사전문가이면서 문학가인 자성(증자(曾子)의 70세손)의 저서 증국번가서(曾國藩家書)에 나오는 말을 해석한데서 유래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강일독경(剛日讀經). ‘강한 날에는 경전을 읽고’ 유일독사(柔日讀史). ‘부드러운 날에는 역사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천간과 지지를 조합해 일진(日辰)이 갑자(甲子), 병인(丙寅), 무진(戊辰), 경오(庚午) 등은 강한 날은 양(陽)에 해당함으로 바깥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자칫 동적인 행동으로 오히려 마음이 뒤숭숭해 질수 있음으로 경전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진정시켜야 한다는 말이고, 반대로 을축(乙丑), 정묘(丁卯), 기사(己巳), 신미(辛未)날 등은 부드러운 날로써 음(陰)에 해당하며 정적인면이 있어 차분하고 조용해지니 역사책을 읽어 투지와 청운의 꿈을 키워 웅지를 펼쳐보라는 말이다.

육십갑자를 보면 강한 날과 부드러운 날이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하루는 경전을 읽고 하루는 역사서를 읽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경전과 역사서를 대칭적으로 배치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전이라 함은 성현들의 전하는 말이나 또는 행실을 통하여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변하지 않는 법식(法式)과 도리를 적은 책으로써 또는 종교적 교리를 적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역사서로는 삼국유사, 삼한 왕조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등을 수없이 많은 양서들을 들 수 있겠으나, 사실 경전과 역사서는 동전의 양면성과도 같은 것이다. 한 쪽은 자기 몸을 갈고 닦는 데에 필요한 책들이고, 다른 한쪽은 세상을 바로잡는 데에 필요한 책들이다. 

정약용은 자기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는 수기지학(修己之學)의 핵심인 경전을 읽어서 밑바탕을 튼튼히 해두어야 한다고 했다. 독서는 사회활동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으로 올바른 사회참여를 위한 준비 작업이다. 독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활화해야 한다는 것을 옛날부터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생활의 철칙’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독서주간’이나 ‘독서하는 날’을 따로 정 할 수밖에 없게 됐을까?  

강일독경유일독사(剛日讀經柔日讀史)이 말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 해보자. 무겁고 답답한 일상에서 피곤한 자신을 독서로 잠시 쉬게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휴식은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하루도 빠짐없이 책 읽는 자세로 심신을 수양한다면 성찰과 반성을 통해 우러나오는 밝은 생각, 좋은 생각이 있을 것이고 그러므로 바른말과 고운 말을 구사하게 돼 인간중심의 문화를 꽃 피우게 될 것이며, 선조들의 선구적 창조 활동으로 나라를 세우고 고난과 끈기의 이음으로 지켜 온 민족사의 배경을 기록한 역사서를 통해 자존감을 가지고 가슴을 활짝 펴게 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독서하는 수단과 방법의 의미’ 같은 무거운 주제에 허덕일 필요는 없겠으나, 반드시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책읽기와도 같이 매우 중요하다.
책의 좋은 내용을 입으로만 읽고, 마음에 담지 못하고 실천 안한다면 그냥 글자를 눈으로만 익혔을 뿐이며, 심신수양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 한다고, 이황은 ‘독서와 실천’의 변증법적 통합을 강조했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다. 우리는 늘 많은 사람과 만나 수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바르지 못하고 곱지 못한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 정신적 살인도 저지른다. 

알렉산데르 푸슈킨(Aleksandr Pushkin) 시 ‘삶’에서 알 수 있듯 삶의 본질 어두운 면에는 고달픔과 고통과 이별과 같은 질곡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것에서 벗어 날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분노가 일고 남 탓으로 미움이 생기고 그것을 표현해야 할 ‘말의 무기’를 만든다. 즉 말 뿌리인 혀에 독가시가 돋지 않기 위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독서의 핵심은 언행을 바르게 하는 근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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