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빨리 맞으라고/ 2월은/ 숫자 몇 개를 슬쩍 뺐다.// 봄꽃이/ 더 많이 피라고/ 3월은/ 숫자를 꽉 채웠다.’ (신복순의 동시 ‘이월과 삼월’) 31일로 꽉 채운 3월도 어느 새 엿새째다. 봄을 빨리 맞고 싶은 기다림으로 2월은 날도 덜 채운 채 급히 떠나고, 서둘러 도착한 3월이다. 아침 바람은 여전히 맵지만, 숫자 ‘3’이 박힌 달력만 믿고 일단 봄이라고 우긴다. 그래야 움츠렸던 어깨 펼 수 있을 것 같고, 얼었던 가슴 조금이나마 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말 ‘지난겨울’을 한자로는 ‘객동(客冬)’이라고 쓰기도 한다. ‘객(客)’이란 낱말에는 ‘손님’과 ‘과거’라는 뜻이 함께 포개져 있다. 사람이든, 계절이든 곁을 파고 드는 무언가는 언젠가 떠나게 마련이어서인가 보다. 겨울을 떠나 보냈으니 이제 봄이다.

남쪽땅에서는 “살짝, 겨우 꽃망울 움트고 있다” ‘살짝’과 ‘겨우’가 이시절 남녘의 춘신(春信)이다. ‘바야흐로’와 ‘완연’을 거쳐 ‘화사’라고 부르기에는 이르다는 뜻이지만 우리는 설렌다. 

춘신 1신(一信)은 산수유 꽃이 마땅하다. 산수유 꽃이 아지랑이처럼 몽개몽개 피어난다면 매화는 사태라도 난 양 산야를 덮어버려서이다. 벚꽃은 그 다음이다. 매화 난장이 끝나고 여남은 날이 지나면 벚꽃 세상이 된다. 벚꽃 지는 밤, 우리 가슴은 무너진다. 벚꽃이 지면 봄도 진다. 객춘(客春), 봄도 객(客)이 된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린, 그 어느날 부터는 거창한 새해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시작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시간에 대한 관념이 달라진 것뿐이다.

달력의 시간과 계절의 시간은 동기화 돼 있지 않다. 달력의 한 해는 1월에 시작해서 끝나지만, 계절의 한 해는 봄으로 시작해 겨울로 끝난다. 겨울과 함께 한 해를 마감하고 새봄과 함께 새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유난히 혹독했던 ‘객동’. 그 겨울 내내 쌓아두었던 삶의 가치와 의미 와도 이별을 했다. 겨울의 시간이 가르쳐준 의미들은 삶의 균형을 맞춰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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