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수단 비밀요원 상당수 암약
CIA 요원만도 3배 이상 급증 추정
가짜 신분 ‘블랙요원’ 치열한 첩보전

강대국 포위속 정보·지략 존망 좌우
우리나라 진짜 ‘스파이 대장’ 있는가
냉정한 적정(敵情)탐지 역사에 남아

 

김병길 주필

지난 2월 9일 개막한 제23회 겨울올림픽·패럴림픽 38일 동안 코리아와 평창은 전세계 겨울 스포츠의 성지(聖地)이자 축제의 무대였다. 38일간 한국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은 백만명이 훨씬 넘었다. 그 중 북한을 포함한 각국의 스파이들(해외 정보원)이 선수들보다 더 치열한 일정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겨울올림픽 북한 선수단·예술단·응원단원 중에는 상당수의 첩보요원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중 북한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공개된 스파이 두목(?)이였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미국 정보요원들만 해도 지난해 8월 북한의 괌 포위사격 위협과 9월 6차 핵실험을 계기로 반년 만에 3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인 신분으로 대북 정보 수집활동을 벌이는 블랙(흑색) 요원까지 합하면 그 숫자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가운데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 요원은 대략 20명 정도로 이들은 한미 연합사, 주한 미8군, 주한 미대사관 등에 상주하며 우리 국가정보원과 교류하거나 민간인 신분으로 암약하고 있다. 이들은 수집한 정보로 대북 첩보 분석 보고서를 꾸며, CIA 본부로 전송하고 있다.

미 정보당국의 대북 정보 활동의 핵심은 북핵 위협 대비 대북 정보를 수집하고 공작 업무를 수행하는 CIA 내 대북 특별조직인 코리아 임무센터(KMC)다. KMC는 신임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의 작품이다. 폼페이오는 한국의 대북 정보에 기대지 않고 미국이 독자적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직원 수백명의 KMC를 설립했다.

남북 대화 국면에서 평창 겨울올림픽기간 한국에 급파됐던 앤드류 김  KMC 센터장은 폼페이오 국장에게 북한 동향과 메시지를 정확히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앤드류 김 센터장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아저씨 뻘(외종숙)이다. 그는 CIA를 은퇴하고 중동쪽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았지만, 코리아 임무센터가 신설되면서 다시 CIA로 돌아왔다.

한편 남북, 미·북 정상회담이 가까워지면서 KMC를 중심으로 한 CIA 등 한국 내 미국 정보요원들이 대북 정보 수집 활동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영화 ‘007’에 등장하는 여성 정보국장 ‘M(주디 덴치)’의 실존인물은 1992~1996년 영국 국내정보국(M15)을 이끈 첫 여성 국장 스텔라 리밍턴이었다. 리밍턴은 한 인터뷰에서 “여성은 동정심을 유발하고 설득력이 있고 때론 잔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보 요원으로선 최적격”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마담 세크리터리(secretary·장관)’는 CIA 분석관 출신 여주인공(티아 레오니)이 국무장관으로 맹활약하는 이야기다. CIA 시절 고문(拷問)에 관여한 적이 있지만 냉철한 분석력과 교섭력으로 외교 난제를 풀어낸 경험이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장 후임으로 여성인 지나 해스펠 부국장을 CIA 국장으로 지명했다. ‘마담 세크리터리’ 주인공처럼 고문에 참여했다는 의혹이 걸림돌이지만 상원 청문회를 통과하면 CIA 역사상 첫 ‘마담 디렉터(directer·국장)’가 된다. 

CIA 근무 경력이 30년 넘는데도 알려진 개인 정보는 ‘일과 결혼한 여자’ ‘훈장 4개 단 최고위 스파이’ ‘CIA 비밀공작국장 출신’ 정도에 불과하다. 해스펠도 평창올림픽 기간 극비리에 한국에 와 남북 당국자와 접촉했다는 소문이 있다.

영화 ‘색, 계(色, 戒)’에서 미인계로 친일파 핵심을 암살하려던 작전은 결국 실패한다. 암살 대상 친일파(양조위)에게 마음을 뺏긴 여주인공(탕웨이)이 마지막 순간에 ‘힌트’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미인계가 통할 때가 많다. 

1986년 이스라엘 핵기술자 모르데하이 바누누는 핵무기 정보를 영국 ‘선데이 타임스’에 흘렸다가 런던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미인계에 걸려 쥐도 새도 모르게 예수살렘으로 압송돼 18년간 옥살이를 한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지만 모사(謀士·꾀 많은 참모)가 많으면 평안을 누릴 것’이라는 성경 구절이 모사드의 좌우명이다.

여성 스파이들의 활약은 두드러지고 있다. 빈라덴 암살 작전에 투입됐던 특전사 요원의 회고록엔 빈라덴을 추적해 포착한 CIA 요원은 ‘젠’이란 암호명의 30대 여성이었다. 

또 2차 대전 중 의족을 하고도 정보를 빼내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스파이’로 꼽았던 버지니아 홀의 사례는 유명하다. 홀은 뉴욕 포스트 기자로 위장해 정보를 빼냈고, 나중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요원들을 이끌고 게릴라전까지 벌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국가일수록 정보와 지략이 존망(存亡)을 가를 수 있다. 해스펠 CIA 국장 내정자를 보면서 우리 국정원장들을 생각한다. 온갖 사람이 있었지만 진짜 ‘스파이 대장’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연예인 같은 사람이 우스꽝스러운 쇼를 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시절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관계가 급진전 될 당시 각국 정보기관의 물밑 각축전이 치열한 때가 있었다. 남북관계 진전이 자국의 이익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놓고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의 정보 활동이 활발할 때 국가 정보원은 이들 외국 요원들에게 촉각을 곤두 세웠다. 신분이 공개된 화이트(white) 요원은 그나마 활동 포착 가시권에 있다. 하지만 언론사 특파원, 상사 직원 등 온갖 가짜 신분으로 활동하는 블랙(black) 요원을 포착하기는 힘들다. 

2000년, 2007년 제1,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서 훈 국정원장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남북 대화 전면에 나섰다. 국가 기밀과 안보를 담당하는 국정원장은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면 이후부터 국민들의 관심에서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남재준·이병기·이병호 등 세 명의 전 국정원장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로 나란히 재판정에 불려 나오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이시각 대북 교섭의 전면에 나서 있는 국정원이 뒤로는 냉정하게 적정(敵情)을 탐지하고 있는지는 언젠가 다시 역사에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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