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동네 전파상에서 라디오 수리
만물에 수명 있어 시간가면 고물(古物)
‘백내장’ 눈알 인공수정체로 갈아끼워

프랑스 대통령의 거침없는 개혁 주목
이상과 현실 사이 지방자치개혁 절실
수명 다한 ‘헌법’ 고치기도 본격 나서야

 

인간의 인성은 고도의 사회적 협력과 개혁을 위해 진화했다. 사진은 파리 로댕 미술관의 ‘생각하는 사람’.

옛날 라디오가 고장나면 동네 전파사에서 고쳐줬다. 자기 몸체만한 베터리를 고무줄로 업고 있는 일제 내셔널 라디오는 큰 재산이었다.  고물이 된 라디오는 ‘만물에 수명이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집에서 매일 보고 있는 TV를 사용 한지가 10년을 훌쩍 넘었다. 그 사이 두번이나 서비스센터 신세를 졌다. 두 번의 수리 모두 낡은 부품 교체였다.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TV 화면은 새 것 처럼 선명해졌다. TV처럼 10여년 사이 내 몸도 병원 신세를 많이 졌다. 오줌통과 폐를 손봐야 했으며 전립선은 여전히 고장난 채 가동 중이다. 안과와 함께 치과도 대기 중이다.

10여년 전에 딸이 살고 있는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옛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장 난 눈을 고치려고 서울에 왔다’고 했다. 70여 년이 넘도록 혹사해 온 눈이니 고장날 때도 됐다. 나는 지난해 양쪽 눈 모두 ‘백내장’ 진단을 받고 한 쪽 눈만 수술하고 남은 한쪽도 지금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양쪽 눈 동시 수술 후 불편할 것 같아 한 쪽을 미룬 것이, 새삼 후회됐다. 남은 한 쪽의 시력이 너무 떨어져 ‘짝짝이 시력’을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졌다.

눈은 우리 몸에서 빨리 노화되는 기관 중 하나다. 노화로 생기는 대표적인 안구 질환에는 백내장이 있다. 눈에서 카메라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낡아 정상적인 투명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혼탁해지는 질환이다. 시야가 뿌옇게 보이며, 한 번 진행이 시작되면 자연적인 치유가 불가능하다. 

백내장 수술법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안과학은 백내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공수정체 렌즈와 백내장 수술법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 아주 먼거리, 약간 먼거리, 중간거리 시야 모두를 교정해주는 4중 초점 렌즈를 사용한 수술까지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치매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치매 유병률)이 지난해 처음으로 10%를 넘었다. 환자 수도 처음 79만 명을 넘어섰다. 한국이 고령사회(노인 인구 비율 14%)에 접어들면서 치매와의 전쟁이 본격 시작된 셈이다. 특히 85세 이상 고령자는 2.2명 중 한 명이 치매 환자였다. 고령화 속도와 수명 연장 등을 감안하면 고령 치매 환자가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부품 교환이 불가능하니 치매는 수리 불가능 질환이다. 지금의 의술로는 진전 속도를 지연시키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또 어린이만 앓는 것으로 알려졌던 주의력 결핍·과잉 행동장애(ADHD)를 앓는 성인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DHD가 정말 존재하는 질환이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이는 뇌 MRI로 확인됐다. 주의력 결핍으로 업무에서 실수가 잦고, 물건을 쉽게 잃어버린다.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하고 세우더라도 완수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쉽게 화를 내고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충동성 때문이다. 성인의 ADHD는 우울장애·불안장애 등 다른 정신 질환이나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 역시 뇌부품을 갈아끼우기가 불가능하니 고질병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거침 없는 개혁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노동 시장 유연화를 위한 노동개혁에 이어 공무원 감축과 국영철도공사 방만경영 수술 등 공공부문 개혁에 이어 이번에는 정치 개혁에 나섰다. 집권 2년째를 맞아 ‘고비용·저효율’의 프랑스병(病) 치유를 위해 전방위 개혁에 나선 것이다.

정치 개혁의 핵심은 첫째, ‘작고 빠른 의회 구성하기’다. 상·하원 정원을 30% 축소하고 예산안 표결 시한을 70일에서 50일로 단축하는 게 대표적이다.

 둘째, ‘기득권 타파’다. 2022년 치러질 차기 총선부터 하원의 15%를 비례대표로 채우고 지방자치단체장의 3연임을 금지한 게 이에 해당한다. 지자체 장이 현역 프리미엄을 활용해 계속 당선되면서 ‘고인물’이 되는 것도 문제다. 마크롱 대통령이 대대적인 프랑스 정치 제도 수리(개혁)를 추진하는 배경이다.

6·13 지방선거가 눈 앞에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개헌 이슈와 맞물려 열기가 더욱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발의한 개헌안에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 분권제’ ‘강력한 지방 분권 공화국’ 구상을 담았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문재인표(標) 지방분권형 개헌이 과연 정답인가는 솔직히 의문이다. 무엇을 위한 자치이고 누구를 위한 분권인지 따져 봐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과 지방 간의 권력 비대칭과 불균형 발전이 그 책임을 통째 지자체의 어정쩡한 헌법적 위상에 돌릴 수는 없다. 자치 분권의 발육 부진에는 다른 요인들도 적지 않다.

어차피 헌법은 그 시대의 삶이 살아 숨쉬는 시간과 공간이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동선을 향한 주민자치의 숙의를 대의하는 관점으로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질문을 던져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대표되지 않은 소수와 약자의 존엄과 인권은 지켜질 수 있는가? 권력 분립과 권한 분산이 대통령 책임제를 훼손하지는 않는가? 깜냥이 안되는 정치인을 4년 동안 지켜보지 않아도 되는가? 1등 말고는 사표(死票)가 되는 과잉 대변의 선거제도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러니 헌법에 시민적 보살핌의 정신이 담겨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낡은 TV를 수리하듯 부품을 갈아치우고, 혼탁한 백내장 눈알에 인공수정체를 갈아끼우듯 바꿀 수 있을까. 수리수리 마수리(修理修理 魔修理) 요술을 부리 듯 수명이 다 된 듯한 낡아빠진 우리 사회체제와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 지극히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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