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소박한 일상 속에도 특별함은 존재
매일 마주하는 가족·나무·길이 내면 성장시켜
텅 빈 노트에 무엇 쓸지는 내 마음가짐에 달려

 

이강하 시인

소박한 일상이 도시적이지 않다고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도시적이고 동그라미 향기로 바빠질 때가 있지 않는가. 어떤 마음으로 바깥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자신의 내면은 더 세련되게 성장할 수 있다. 매일 그 시간에 지나가는 기차와 버스들, 매일 만나는 가족들, 매일 만나는 나무의 그림자들, 매일 스치는 상점과 자전거들, 익숙한 길모퉁이 옆 간판 등이 동그라미 성장의 대상이다. 일감 없는 하루가 자신을 힘들게 했었을지라도 잠들기 전 최상의 긍정은 몇 배의 상쾌한 바깥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몇 달 전 친구로부터 반가운 메시지를 받았었다. 우리가 꼭 봐야 할 영화가 나타났다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함께 보고 싶다고. 영화명은 ‘패터슨’이다. 필자는 고민 끝에 검진 받을 병원도 알아볼 겸 상경했다.

영화 ‘패터슨’은 필자가 근래에 본 영화 중 최고였다.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들, 그 순간순간이 뭉클해짐을 느끼는 탄력적인 작품이다. 짐 자무쉬가 감독인 이 영화는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이라는 소도시가 배경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이 거주하는 패터슨의 지명과 동명이다. 영화 속으로 빠져들수록 묘사의 감각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패터슨의 직업은 소도시의 버스운전기사이면서 시인이다. 패터슨은 아내인 로라를 무척 사랑한다. 패터슨의 시 속에 나오는 로라는 성냥갑 속 성냥이면서 결 고운 꽃이다. 

로라는 그림과 기타에 관심이 많고 집에서 작업을 한다. 소박한 것 같으나 소박하지 않은 그녀만의 문화를 즐기며 발전시킨다. 남편을 내조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강아지 마빈은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무지개이면서 경계의 벽 같기도 하다. 로라만 좋아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패터슨에게 관심을 받고 싶다는 것인지 패터슨이 출근하면 대문 앞 우체통을 두 발로 차서 휘어지게 한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퇴근한 패터슨을 빤히 본다. 강아지 마빈의 표정은 천연덕스러우면서도 귀엽기까지 하다.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이지만 두 사람의 대화 속에는 동그라미 향기가 산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은근하다. 서로에 대한 칭찬은 서로를 사랑하는 힘에서 나온 것일 테다. 패터슨은 작은 가방을 들고 출퇴근을 한다. 키 큰 체구에 장난감처럼 생긴 작은 가방이라니, 필자는 계속 그 가방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가방 속에는 로라의 사진, 로라의 컵케이크, 패터슨의 시가 적힌 비밀노트가 들어있다. 패터슨의 눈은 관계된 것들을 새롭게 움직이게 하는 어떤 힘이 있다. 

패터슨이 바라봤던 흑백 사진들이 또 다른 관계를 불러낸다. 먼 옛날 시인을 불러낸다. 패터슨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세계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패터슨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초기 시 모음집’ 이라는 시집을 자주 만진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미국 뉴저지주 러더퍼드 출생이며 과장된 상징주의가 아닌 평범한 관찰을 기본으로 한 ‘객관주의’ 시를 표방해 작품을 쓴 시인이다. 시집으로 ‘브뢰겔의 그림, 기타’, ‘패터슨’ 이 있다. 그는 시를 ‘관념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 시인이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는 그동안 패터슨이 써놓은 시(詩) 노트가 사라지면서 부부는 슬퍼한다. 그러나 패터슨이 좋아하는 폭포 앞에서 일본 시인을 만나 윌리엄 카를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노트 한 권을 선물 받는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한다는.

이 영화로 인해 필자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에 대한 자료를 찾아 공부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삶의 순간순간을 명확한 사상으로 시를 이끌어내는 패터슨을 닮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매일 같이 있어도 지루하지 않는 남편의 친구로, 아이들의 선배로 매일 새롭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패터슨! 누구든 언제든 일상이 지겹게 느껴질 때 한 번쯤 이 영화를 관람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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