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사건’ 후 여성폭력에 대한 시선 바뀌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원점으로 돌아갈 것
올바른 인식 자리 잡으려면 국가·사회에서 노력해야

 

김종점울산여성회 부설 북구가정폭력상담소장

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역 10번 출구 남녀공용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 의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지 2년이 됐다. 

그 사건 이후 수 많은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체적 위협에 대한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호소했고, 많은 남성들은 여성들이 평상시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를 조금은 공감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러나 과연 2년이 지난 오늘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을까? 
올해 초 한 여검사의 용기있는 성폭력 피해 고백이후 대한민국은 곳곳에서 성폭력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는 ‘#me too’가 줄을 이었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불쾌한 성적 접촉을 경험했다고 이야기 했고, 심각하게는 성폭행과 같은 피해를 당하고 수년에서 수 십년의 시간 동안 말 못할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눈물로 호소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는 별개로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행위에 대해 무감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 인사들의 공통적인 발언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대방도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조직에서 내려오는 관행이었다”등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남기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런 행위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왜, 수많은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왜 또 수많은 피해자들은 피해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을까. 우리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대한민국은 죽을 힘을 다해 용기를 내야했던 수많은 피해자들을 또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괴물이 될 것이다. 

여성을 향한 이유 없는 혐오와 폭력, 그 혐오를 또 다시 혐오로 돌려주는 대립된 상황은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원했던 상황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황이나 조건속에서도 존중받기를 원한다. 성별, 학력, 장애, 소득, 지위, 출신지역에 관계없이 한 사람의 인격이 지켜지기를 원한다. 내가 여성이어서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거나, 내가 지위가 낮다고 해서 갑질의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왕처럼 군림하며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민낯을 우리는 무수히 목격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아마도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세상에 나와 똑같은 행위들을 반복할 것이다. 아주 잠깐의 고개 숙인 사과를 대중에게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잊혀질때쯤 피해자들에게 명예 훼손과 무고 등의 고소를 통해 또다시 피해자들을 처참히 짓밣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잠깐의 이해와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불평등한 성인식을 바꾸고 싶은 것이다. 남성들을 잠재적 성폭력 범죄자로 치부하지 않고, 여성들이 잠재적 피해자가 되는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 이런 세상은 특정인이, 특정단체가 만들 수는 없다. 국가시스템에서 정책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교육의 현장에서 일상화 되어야 하며, 사회 곳곳에서 인식변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뤄져야 한다. 성적인 불쾌감을 주는 상황에서는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조직 내 환경을 바꿔야 하며,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후보들이 내걸고 있는 “여성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공약들이 단지 이슈를 선점하려는 정치쇼가 아닌 누구나가 체감할 수 있는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 여성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소리를 낼 것이며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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