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룬 뒤
삶의 흥미 잃어버려 공허감 찾아와
`무엇'보단 `본질'로 가는 꿈 찾아야

송광용백합초 교사

언젠가 <비정상회담>이라는 방송에 출연한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후퍼가, 꿈에 그리던 에베레스트를 최연소로 등반한 후 우울증에 빠졌던 이야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듣던 MC 유세윤은 “나도 개그맨이라는 꿈을 이룬 후에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 우울증을 겪었다”라는 고백을 했다. ‘꿈’이라고 불리는 것을 이뤄 힘든 시대에 살다 보니, 허망해져도 좋으니 그거 한 번 이루어 봤으면 좋겠네, 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고 나서 공허함에 이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일이나 사회적 지위에 생의 의미를 둔 많은 이들이 어떤 일을 이루고 난 뒤에 공허감을 느끼고 삶의 흥미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그들의 소망이, ‘무엇이 되고 싶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소망대로 무엇이 돼버리면, 더 나아갈 길이 없다. 이미 돼버린 그 ‘무엇’을 옷처럼 입고 배회할 뿐이다. 크건 작건 우린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 있다.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을 이루었는데, 이내 공허해졌던 것 말이다. 그리고 그걸 이루면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 자리에 가도 그리 대단치 않다는 걸 느꼈던 것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소망의 명제를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이 되고 싶다’ 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앞의 ‘무엇’은 역할이나 지위 따위를 의미한다. 뭔가를 소유할 수 있는 자리에 도달한 것이다. 그 명제는 자신의 꿈을 현재 진행형이 아닌, 최종으로 결정된 자리에 둠으로써 더 나아갈 곳이 없게 만든다.

 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것은 꿈을 계속 살아있게 만든다. 쉽게 도착하기 어려운 지점임과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무엇이’ 되지 않아도 생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물리적 성취보다 자족함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격과 성품의 성장도 포함한다.

 예를 들면, ‘의사가 되고 싶다’ 와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명제의 차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 와 ‘다른 사람들에게 글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명제의 차이다. ‘교사가 되고 싶다’ 와 ‘누군가의 삶에 좋은 씨앗을 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명제의 차이인 것이다.

 이 명제 차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 앞의 명제는 작가나 의사가 되고 나면 더 나아갈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후자는 ‘무엇이’ 되든 되지 못했든 그 길은 끝없이 열려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지금 여기에서, ‘나는 글로 타인의 마음에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명제를 품고 글을 쓰는 이상, 현재 그의 꿈은 이루어지고 있으며, 혹시 훗날 그가 프로 작가가 된 후에도, 그 꿈은 변치 않고 이어질 것이다. 죽을 때까지, 펜을 놓을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꿈은 시들지 않고, 계속 그 자신에게 성장의 동력을 주게 된다. 설령, 프로 작가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현재 글로 타인의 마음에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므로, 삶의 의미를 품고 걸어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명제는 성취의 본질에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보호 장치도 된다. 의사가 되더라도 돈이나 다른 가치 때문에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의사가 되면 안 되는 것이다. 기자가 되더라도 함부로 쓴 기사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나와선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명제는 그 목표가 품고 있는 ‘사명’을 수시로 상기시켜준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희의 꿈이 뭐냐고 물을 때 그것의 대답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아무리 ‘무엇’이 되는 것 자체가 힘든 세상이라도, 그거면 다라고, 거기까지 도달하면 끝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많은 어른들이 성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하고 있는 길을 옳다고 말해선 안 된다. 아이들에겐, 네가 비록 그 ‘무엇’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런 가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면 멋진 길을 가는 거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필요한 게 아닐까. 어쩌면, 오늘도 앞만 보고 달려가는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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