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 찍고 군중에 손 흔들고…"싱가포르 지식·경험 배우고 싶어"
할아버지·아버지와 다른 '북한' 꿈꾸는 듯…"그릇된 관행 이겨내"

'은둔의 왕국'에서 성장한 젊은 지도자는 많은 과거 관행들과 결별을 원하는 것 같다.

장거리 비행을 피하지 않고 대중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거침이 없으며 새로운 문물에도 거부감이 없다.

지난 10일 싱가포르에 도착해 2박 3일간 머물며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역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국무위원장 얘기다.

그는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앞두고 모두 발언에서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걸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대결과 반목의 북미관계를 염두에 둔 발언이겠지만 과거와 결별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읽힌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주체'와 '선군'의 이름으로 남긴 가난과 폐쇄, 고립이라는 유산을 벗어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를 찾았다는 사실 자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고소공포증을 앓는 부친은 기차로만 이동했지만 젊은 지도자는 항공기를 타는데 주저함이 없다. 더군다나 국가의 체면을 내세우는 북한에서 중국의 항공기를 빌려 타고 정상회담 길에 오르는 파격까지 눈길을 끈다.

노동신문은 중국의 오성홍기가 선명한 에어차이나 항공기에 오르는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1면에 실어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괘념치 않았다.

싱가포르 도착 첫날 리셴룽 총리와 회담 외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던 김 위원장은 이튿날 한밤중 싱가포르의 명소로 향했다. 한밤 나들이였던 셈이다.

싱가포르 동남부의 마리나베이에 있는 초대형 식물원 가든바이더베이에서는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외무장관과 여당 유력정치인인 옹 예 쿵 교육부 장관과 함께 웃음을 지으며 '셀카'를 찍었다.

전 세계 대부분의 30대가 셀카를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김 위원장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도 그대로 읽혔다.

또 김 위원장 일행을 보기 위해 몰려들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대는 군중을 향해서는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도 보여줬다.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로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경호원을 대동하지만 어쩌면 30대의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그것이 불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은 이번 싱가포르에 180여 명의 대표단을 구성하면서 절반이 넘는 100명 정도를 경호원으로 채울 정도로 '최고 존엄'의 안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한밤의 나들이를 하면서도 김 위원장은 북한의 과거와 결별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의 대표적 상징물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보고 "싱가포르가 듣던바 대로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건물마다 특색이 있다"며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귀국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정치적으로 독재와 권위주의 통치를 유지하면서도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세계 10위 수준인 6만1천766달러에 이르는 싱가포르는 김 위원장이 꿈꾸는 '북한몽' 일 수도 있다.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서며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김 위원장의 의지는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지난 과거를 걷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서명을 하게 된다"라며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확대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훌륭한 출발을 한 오늘을 기화로 해서 함께 거대한 사업을 시작해볼 결심은 서 있다"고도 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때의 북한과는 다른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드러난다.

평양에서 4천700㎞를 날아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김 위원장은 12일 밤 어둠을 뚫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GDP 세계 10위의 싱가포르를 경험한 그가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 어떤 청사진을 그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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