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경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로 한 세 살배기 외손자를 승용차 뒷좌석에 태운 외할아버지가 깜박 잊고 회사일을 보고 점심 식사까지 한 다음 오후 1시 반 경 승용차로 돌아왔다. 경북 의령의 64세 이 할아버지는 차 문을 열고서야 외손자를 봤는데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이날 낮 기온은 30도를 웃돌며 무더웠다. 맞벌이 딸 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 할아버지의 어이없는 ‘손자 잃기’ 황당 뉴스는 출산율 1명 이하의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비웃는 저주같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국내행사에서 “출산율 최저, 자살률 최고 등 한국의 각종 지표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수준”이라며 현 정부의 산업·경제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2000년대 초에 이미 1.30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산아 제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2005년에 드디어 1.08을 기록하자 화들짝 놀라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던 구호를 ‘하나는 외로워요’로 바꾸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올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저출산 관련 예산 합계액이 30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약 4조3,000억원의 신규 예산이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신생아 수는 갈수록 급감하고 있어 신생아 1인당 투입되는 저출산 관련 예산액은 급증하고 있다. 급기야 내년엔 신생아 1인당 소요되는 저출산 관련 예산액이 1억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처음 세우고 실행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26조원의 돈을 썼지만 지난해 출생아수가 35만7,700명을 기록,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를 놓고 백화점식 대책을 모두 없애고 출생아 한 명에게 직접 1억원씩 주는 게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결혼지옥’ ‘출산지옥’ ‘육아지옥’ ‘차별지옥’이라는 4대 지옥에서 탈출해 ‘일하며 아기 키우기 행복한 나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들린다. 안타깝게도 저출산 대책 우선순위 1번이 되어야 할 취업난 해결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보인다. 부족한 일자리가 ‘출산지옥’으로 가는 ‘결혼지옥’의 문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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