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정영진 울산매일신문 복산지국장

울산매일과 독자를 이어주기 위해 달려온 27년의 길 

1992년 울산매일 창간 때부터 인연을 맺은 후 27년간 울산매일과 독자들을 잇는 역할을 해온 정영진 복산지국장. 인심 좋은 ‘울산매일신문 아저씨’로 통한다는 그는 ‘나는 좋은 정보를 가져다주는 사람’이라는 사명감으로 오늘도 달린다. 임경훈 기자 qtm0113@iusm.co.kr

캄캄한 새벽, ‘부릉부릉’ 시동을 거는 오토바이 소리가 울산 중구 반구동의 골목을 울린다. 27년째 조그만 오토바이에 ‘울산매일신문’을 싣고 달리는 이가 있다. 그는 바로 본지 창간 때부터 함께해온 정영진 복산지국장이다. 막 구워진 빵처럼 뜨끈뜨끈한 신문을 기다리는 손님들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힘차다. 시민들의 희망찬 아침을 울산매일로 열어주고 있다. “울산매일 창간 27주년을 마음 깊이 축하드린다”는 그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해병대 전역후 동생 제안에 울산행
1992년 본지 창간 때 인연 맺어
복산·학성·반구·약사 400부 책임
밤 11시~아침 8시 신문배달 업무
27년 동안 수레바퀴 같은 하루
“내 인연이 울매 인연이라고 생각” 

 

◆“울산매일이 창간한다더라!”
정영진(77) 울산매일신문 복산지국장은 1990년부터 신문 일을 시작했다. 대구 출생으로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해병대 주임상사로 30년 있다가 전역한 그는 신문사 지국일을 해보자는 남동생의 연락을 받고 울산으로 내려왔다.

2년 후인 1992년, 지방지가 흔하지 않던 시절 ‘울산매일신문’이 창간한다는 이야기가 그에게 들려왔다.

정 지국장은 “당시 울산매일이 지방지들 중에서 내용도 좋고, 회사 직원들이나 기자들이 신문 확장에도 힘쓰고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래서 ‘아, 이거 내가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국을 하나 맡겠다고 직접 이야기하고 울산매일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그는 현재까지 복산, 학성, 반구, 약사동 전 구역에 나가는 본지 400부를 책임지고 있다. 최근에는 타 지국에 오랫동안 정 들었던 성남동 구역을 넘기면서 시원섭섭한 마음도 들었던 그다.

◆밤 11시 커피 한 잔과 하루일과 시작
정 지국장의 하루일과 시작은 본지 취재기자들이 하루종일 장 봐온 것들을 편집기자들이 요리조리 요리한 후, 최종적으로 신문이 발행되고 나서부터다.

시간은 대략 오후 11시정도인데, 그는 이쯤 사무실로 출근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다 보면 오후 11시 30분정도부터 울산매일을 포함한 신문들이 속속 도착한다.

이때부터는 그의 손길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체되면 신문배달도 늦어지고 그만큼 마감 시간도 늦어지기 때문.

정 지국장의 신문배달 오토바이 시동이 걸리는 시간은 다음날 오전 1시쯤이다.

그는 “2시간여 동안 정신없이 신문을 분리하고 정리하다보면 금세 날이 넘어간다”며 “그때부터 구역마다 돌아다니며 신문을 배달하고, 빨리 마치는 날은 당일 오전 7시30분 안 되서 끝나지만 지체된 날이면 오전 8시에 마무리된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일을 보다가 정오에 집에 가서 밥 먹고, 물리치료 받고 오후 6시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레바퀴처럼 살아온 지가 벌써 ‘27년째’다”고 덧붙였다.

하루가 이렇다보니 개인일정을 소화하기가 벅찰 때도 있지만 이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의 인연은 결국 돌고 돌아 울산매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거다.

그는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때는 잠시 짬을 내서 후딱 다녀오곤 한다”면서도 “바쁘지만 결코 사람들 만나는 일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 사람 사이의 인연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결국 나의 인연이 울산매일과 이어진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친절한 ‘울산매일 아저씨’로 유명
비바람 불땐 허리 굽혀 신문 사수
험한 말에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독자들의 독려 한마디가 큰 힘
배달 계속 하고자 체력관리 힘써
“울산매일의 번영 영원히 응원”

 

◆비올 땐 허리 굽혀 신문사수하기도
정 지국장은 20년 넘게 신문 일을 해온 베테랑이지만, 힘들 때도 많다. 특히 종이신문 특성상, 날씨의 영향이 가장 크다.

그는 “비 오는 날에는 비닐로 신문을 싸서 다시 봉지에 넣어서 배달한다”며 “가장 힘들 때는 비바람이 불 때다. 신문이 온 천지로 날리다보니 허리를 굽혀서, 비에 젖지 않게 보호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경을 쓰면 눈앞이 뿌옇게 돼 비는 그냥 맞는 게 훨씬 편하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때론 황당하거나 속상한 일도 있다. 그는 “신문을 직접 배달했는데, 신문이 없다고 할 때는 정말 당황스럽다”며 “그래서 최대한 빨리 신문을 다시 가져다 드리곤 한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 오전 내내 오토바이에 신문을 가득 싣고 다니는 그에게 ‘어이, 한 부만 주고가라’, ‘빨리 좀 갖다줘’ 등 험한 말을 쉽게 내뱉는 일부 사람들의 말에 상처 받기도 한다. 이때는 “오늘 신문 배달량만 들고 나와서 신문이 없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갖다드리겠으니, 기다려주세요”라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그다.

◆“울산매일 아저씨, 고맙습니다!”
이 때문인지 정 지국장은 친절하고 인심 좋은 ‘울산매일신문 아저씨’로 소문나 있다. ‘고맙습니다’ ‘아침에 수고 많으신데, 커피 한 잔 드시고 가세요’라는 독자들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될 때가 많다.

그는 “좋은 이야기를 듣다보면,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결국, 신문일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명이라도 좋은 인연을 만들면 1년에 12명, 10년이면 120명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신문배달이 쉬운 건 아니지만 다툼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들도 언젠가는 독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울산매일을 나르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좋지 않으면, 신문 자체의 이미지도 나빠진다는 생각이다. 시민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이 같은 다짐을 매일같이 한다”고 강조했다.

◆힘닿는 데까지 울산매일과 함께할 것
정 지국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울산매일과 함께 하겠다는 각오다. 80세를 앞두고 있는 그는 체력관리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배달 나가기 전이나 끝나고 나서 꾸준히 운동을 한다”며 “이 일 또한 내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임하니 몸과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나는 좋은 정보를 가져다주는 좋은 사람이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현장에서 고생하는 지국장들에게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는 “중구우슈연합회장, 효사관학교 효사관 지도사 등 지역사회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려 노력한다”며 “힘닿는 데까지 손에서 신문을 놓지 않을 것이고, 울산매일의 번영을 영원히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이다예 기자 yeda0408@iusm.co.kr
사진=임경훈 기자 qtm0113@iusm.co.kr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