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없는 자본주의? ‘팥소 없는 찐빵’이 아니다. 이제 현실이 됐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토지, 농장 등 어떤 것의 가치를 측정할 때 물리적 물건을 쟀다. 하지만 최근엔 밭과 황소는 기계와 공장, 차량, 컴퓨터에 자리를 내줬다. 경제는 유형 자산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물리적 재화가 아닌 아이디어, 디자인, 지식 및 사회적 관계도 가치를 만들어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무형자산’이다.

2006년 세계 최대 가치의 기업은 ‘마이크로 소프트’였다. 시장가치는 2,500억 달러였지만 대차대조표상 공장과 설비는 단 30억 달러에 불과했다. 자산의 4%이자, 시장 가치의 1%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마이크로 소프트는 ‘모세의 기적’과 같은 회사였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를 주목하게 된 건 이때부터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R&D와 아이디어, 브랜드 가치, 인적 자본은 시장가치의 99%를 만들어낸 ‘무형 자산’이었던 것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 10여년간 구조 개혁이라는 가장 중요한 시험대를 통과하는데 실패했다. 쓴 약을 먹어야 더 건강해지는데 각 이익집단이 약 먹기를 거부하고 정부는 여기에 영합했다. 그 결과 잠재성장률이 3%가 될까 말까 한 나라가 됐다.

정부는 기업 활성화 대신 검증 안 된 ‘소득 주도 성장론’을 들고나와 반기업·친노동의 정책 역주행을 펼쳤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법인세 최고 세율을 인상해 기업 부담을 늘렸다. 정부 돈으로 일자리 만들고 근로소득도 늘려 준다며 33조원을 쓰고도 일자리 목표가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세금 10조원을 또 퍼붓겠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한국 경제 위기는 최저임금에서 온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조차 줄 수 없는 좀비 자본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반박했다. ‘좀비 자본주의’는 영국의 학자 크리스 하먼이 쓴 책 제목이다. 자본주의가 좀비처럼 제 기능을 못하지만 노동자를 착취하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일자리 늘리기의 해답은 간단하다. 기업을 뛰게 하면 된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 시대’에 구차하게 ‘좀비 자본주의’를 내세워 한국경제 성장의 근본을 부정하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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