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축사지 발굴조사에서 나온 불상들.  
 
   
 
  ▲ 울산박물관 영축사 발굴조사 특별전 도록.  
 
   
 
  ▲ 영축사지 발굴조사에서 나온 청동유물들.  
 
   
 
  ▲ 영축사지 발굴당시 모습.  
 
   
 
  ▲ 5차조사에서 확인된 영축사의 전체 가람배치를 통해 감은사에 버금가는 영축사의 위상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울산에 있던 영축사, 동축사, 태화사 등 큰 사찰들이 신라 중대 호국불교의 대중화와 전국으로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주헌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발간된 울산박물관 영축사 발굴조사 특별전 도록(사진)에 실린 논고(‘영축사를 통해 본 통일신라시대 울산 불교의 위상’)를 통해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 연구관은 영축사지 발굴조사를 계기로 울산에 있었던 사찰들의 역할을 주목했다.

그는 “통일신라시대 울산에는 다른 지방에 비해 불교사원이 많이 조성됐다. 이들 사원의 조성에 승려·개인이 주역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으므로 울산 영축사의 위상은 감은사와 같은 성전사원급으로 평가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원광, 자장, 원효, 낭지, 연회 등 이름난 고승들이 울산의 각 사찰에서 포교·저술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는 기록은 울산의 불교가 신라통일기 이후 불교계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특히 영축사와 동축사, 태화사는 당시 경주 바로 아래 위치한 울산이 선진문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항구라는 특수성을 최대한 활용한 문화거점으로서, 신라 중대 호국불교의 대중화와 전국적인 확산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차순철 연구원은 ‘영축사지 기와의 특징과 변천’이라는 주제논고에서 울산 영축사지에서 출토된 각종, 암 수막새들과 명문와를 세밀히 살폈다. 그는 “영축사지의 가람형태는 경주 감은사에 보이는 1금당2탑 양식을 잘 반영한 것으로, 이는 경주이외지역에서 창건된 통일신라시대 사찰 중 가장 빠른 사례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영축사지에서 출토된 기와를 통일신라시대 초에서 고려시대까지 울산지역의 사찰에 사용된 기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하면서 “경주지역의 기와를 사용하다 점차 지방고유의 모습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변화모습은 지방문화의 발전과 수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주변 사찰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영축사는 『삼국유사』에서 신라 신문왕 3년(683년)에 창건됐다는 기록이 있다. 오래전부터 그 터로 추정되는 곳(울산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는 삼층석탑과 귀부가 있어 예부터 관련학계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에 울산박물관은 영축사지(울산시 기념물 제24호)를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총 5년간 발굴조사했다.

조사결과 각종기와, 석조여래좌상, 광배, 꽃무늬 손잡이, 청동향로 등 1,700여점의 출토유물을 통해 통일신라시대 창건이후 고려시대까지 존재하면서 당시 수도인 경주지역의 주요사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규모와 위상을 가진 사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울산박물관은 2018년 특별전으로 지난 5월 1일부터 8월 26일까지 기획전시실1에서 ‘울산 영축사(蔚山 靈鷲寺), 천년의 신비에서 깨어나다’를 열어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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