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도시들 `메가시티’ 전략 구사
산업 등 상생‧협력 조건 갖춘 부·울·경
공통분모 찾아 극대화할 공동전략 필요

심재운부산상공회의소 조사연구본부장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해 여름도 이젠 조금씩 열기가 식어가는 듯하다. 혹서(酷暑)의 여름도 절기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나 보다. 우리 부·울·경에 짙게 깔려 있는 경제 위기와 불황의 긴 그림자도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그 시간을 얼마나 단축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전략을 구사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동안 부·울·경은 역사적 동질성을 가진 한 뿌리이면서도 오랜 시간 동안 적지 않은 갈등을 빚어 온 것이 사실이다.

신공항의 입지를 두고 수년을 치열하게 다퉈 왔고 수돗물을 두고도 불신의 골을 깊게 파면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걸어왔다. 이미 세계적인 도시들은 지역을 초월한 메가시티(Megacity)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서로의 비교우위를 인정하면서 ‘갈등보다는 화합'을 `혼자보다는 함께'를 통한 공생의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부·울·경의 선택도 분명해졌다. 지역에 잠재돼 온 대립과 갈등, 반목의 `노멀(Normal)'을 버리고 화합과 협력, 상생과 발전의 `뉴 노멀(New Normal)'을 만들고 이를 공유해야 한다. 실제 부·울·경은 역사적 동질성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자동차와 조선을 중심으로 한 부품소재산업 분야에서 국내 최대의 클러스트를 구축하고 있는 등 충분한 상생협력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광역교통망의 발달로 이미 단일경제권이 된지도 오래됐다. 부산인구 절반은 울산과 경남에 연고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인연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국가 과제가 되고 있는 국토균형개발적 측면에서도 부·울·경은 새로운 시험무대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국토면적의 12%, 인구의 16%, 지역총생산의 17%, 전국사업체의 16%가 집적된 부·울·경은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수도권에 견줄만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뉴 노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이런 충분한 잠재력이 있음에도 이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책임은 행정에 있다. 민선이후 강화된 지방자치는 지나친 선명성 경쟁을 해 왔다. 지방권력의 재창출을 위해 성과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이다.

지역에서 시도지사가 바뀔 때면 늘 하는 일이 있다. 상생협력의 절실함에 대한 공감을 표하고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정책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상생의 협력을 약속하고 다짐한 협약서의 잉크가 채 마르지 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각론에서는 딴 소리를 서로 또 하고 있다. 지방정권의 변화로 `뉴 노멀'을 기대한 800만 부·울·경 주민들에게는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닐 것이다. 행정 통합의 절실함만 더해주고 있다.

다행인 것은 지방행정에 비해 민간에서는 보다 진전된 노력이 가시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울·경 상공회의소는 지난 2013년 민간차원에서 지역 간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인들이 중심이 되어 ‘동남권경제협의회’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매년 공동의 아젠다를 도출하고 현안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뿐만 아니라 시도지사와 지역 각계의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동남권상생발전포럼'을 발족시키기도 했다. 포럼은 2015년 부산에서 처음 열린 이후 울산과 경남을 순회하며 매년 한 차례씩 개최됐고 이달 말 부산에서 네 번째 포럼이 다시 문을 연다. 특히 이번에는 최근 한반도의 화해 무드를 지역 경제성장의 새로운 전기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경제’를 모토로 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부·울·경은 지금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지역의 주력산업이 모두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선언적 의미의 상생협력은 허상일 뿐이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고 이를 극대화하는 공동의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그 해답은 상생과 협력에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동의 번영을 위한 양보만이 지금의 부·울·경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줄 유일한 대안이다. 그 `트리거(trigger)'를 누가 먼저 당기느냐 하는 것은 간절함이 열쇠가 될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과거의 갈등과 대립을 반성하고 상생과 협력, 그리고 양보의 새로운 질서를 모색할 수 있는 가장 적기다. 이제는 부·울·경에도 과거의 `노멀(Normal)'을 일소할 수 있는 `뉴 노멀(New Normal)'의 시원한 빗줄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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