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에서도 건강한 모습의 해바라기들
지난 여름 추억 떠올리게 해 마음의 위안돼
그 강인한 모습 닮아 전쟁같은 삶 버텨낼 것

 

이강하 시인

“나는 천천히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코, 뒤로 가지 않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   아침마다 필자를 깨운다. 결코, 어제의 상처로 게으름을 피우지 않기 위해서 별과 태양이 새겨진 신발을 찾아 신는다. 그 신발을 신고 동녘하늘을 고요히 바라볼 때가 가장 편안하다. 그 편안함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모퉁이를 돌아 올라간 돌계단에 서서 곧 떠오를 태양을 천천히 기다린다. 

기다림에 익숙한 꽃처럼 새롭게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을 가만히 들어 올린다. 열손가락이 뜨겁게 달아오르도록 동그랗게 매만진다. 그리고 어제의 어둠을 지우며 반성한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기다림의 순간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찰나의 힘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그리 길지 않는 미래라 생각하면서도 그 순간이 좋은 것이다.

세상은 넓고 길다. 광활한 낮과 밤은 각기 다른 색으로 날마다 바쁜 시간을 견뎌낸다.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계절 따라 빠르게 움직인다. 그렇지만 인생은 짧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모든 사람의 수명은 똑같지 않다. 진정으로 좋은 추억이 될 만한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건강했을 때의 추억이 많을수록 행복했던 사람이었다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비록 오늘 생각이 건강하지 못했어도 떨어진 꽃잎을 어둠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부자든 가난하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니까. 죄를 짓지 않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좀 더 나은 씨앗을 물려주기 위해서 끝없이 지구를 보살피는 사람은 더 아름답다. 언제 어떤 이유로 생을 마감할지 예측 불가능하므로 하루가 백년이라고 생각하면서 선하게 살아야한다. 

필자의 여름휴가는 짧았다. 폭염도 폭염이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서 거의 집에서 보냈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가까운 바닷가 찻집에만 다녀왔다. 휴가가 시작된 후 먼저 어머님을 찾아뵀지만 마음이 아팠다. 나이가 들면 어른들의 삶이 다 그런 것이라고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몸이 계속 아팠다. 

입추가 지나서일까. 조석의 바람이 시원하다. 오랜만에 태화강공원 벤치에 앉았다. 다양한 식물들이 파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깔끔하게 만들어진 대나무평상들이 정겹게 보였다. 그 옛날 고향집이 생각나고 아버지가 생각나고 집 앞 놀이터가 생각나고 섬진강재첩이 생각나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생각났다. 

멀리 전라도에서 온 방문객 한 팀이 필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필자는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 해바라기정원으로 안내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소녀들을 만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해바라기 속 그들의 옆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작년 여름에 이곳을 방문한 서울의 시인들이 생각났다. 십리대숲을 거닐었던 모습, 해바라기와 사진 찍던 모습도 생각났다. “시인들이여, 이 폭염을 어찌 견디고 계시나요?” 마음속으로 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보았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해바라기들을 만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과 소피아 로렌이 출연한 해바라기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전쟁 중 실종된 남편을 찾기 위해 긴 여정에서 만난 해바라기, 우크라이나 들판에 끝없이 핀 해바라기는 그냥 해바라기가 아니었다. 비록 영화의 결말은 슬펐지만.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을 확인한 한 여인의 집념이 빛났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삶은 전쟁 같은 나날이다. 전쟁 아닌 삶이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속도의 빠름 속에서 고통과 기쁨은 동등하게 공존하는가보다. 해바라기들이여,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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