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울산대 시각디자인 전공 교수

손으로 글씨를 써서 편지나 문서를 주고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는 아주 먼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일일이 손으로 쓰고 지우는 번거로움 없이 쉽게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능해져 이제는 손보다는 컴퓨터를 비롯한 여러 전자기기를 사용해 글을 쓰는 게 보편화됐다.

전자기기를 활용해 글을 쓰려면 글꼴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글꼴을 설치해야 한다. 글꼴은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컴퓨터 등을 구입할 때 어느 정도 이미 내장돼 있어서 바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글꼴의 전부는 아니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양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글꼴의 수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중에는 심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뛰어난 것도 있는 반면에 디자인이 조악한 것도 있다.

글자를 공간에 배열하기 위해서는 글꼴을 선택해야하는데, 글꼴의 종류가 생각보다 많고 다양해서 선택에 앞서 다루고자 하는 글의 성격이 어떤지 잘 파악해야한다. 글꼴에 따라 정보가 더욱 돋보이거나 쉽게 전달되기도 하는 등 정보의 성격에 적잖은 영향을 주어서 글꼴의 선택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궁서체'라는 고전적 느낌의 글꼴을 IT관련 내용에 사용하면, 글의 내용과 글꼴의 형태 사이에 발생하는 이질감 때문에 독서를 방해하게 된다. 글의 내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글꼴이 만들어지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글꼴을 만드는 이유가 너무도 당연하게 글로 이루어진 정보를 읽기 위해서지만, 글자가 읽히는 환경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제대로 읽히게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에 글꼴 디자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글자가 잘 읽히기 위해서는 가독성을 고려해야 한다. 보통 본문용으로 제작된 글꼴들이 이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써서 오랜 시간 글을 읽어도 눈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본문용으로 개발된 글꼴들의 모양이 조금 평범해 보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며, 이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은 단행본, 신문 잡지 등의 본문에 사용된다. 로마자 글꼴 중 '타임스 뉴 로만(Times New Roman)'은 런던의 한 신문사를 위해서 디자인된 것으로 뛰어난 가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열악한 인쇄 환경에서도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문용과는 다르게 좀 더 외형적인 형태가 도드라지게 디자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제목용 글꼴이라고 한다. 제목용 글꼴은 긴 글줄을 다루는 본문용과 다르게 짧게는 한 줄에서 길게는 서너 줄 정도의 글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크기도 본문용보다 훨씬 더 크게 사용한다.

제목용은 글꼴의 모양에 장식적인 면이 들어가기도 하는 등 글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반영해 내용을 나타내는데 역할을 하며, 출판이나 광고, 모바일 매체 등에서 제목을 위해 활용된다.

본문용과 제목용 외에도 글자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공항의 사인 시스템이나 고속도로 표지판에 사용하기위해 만들기도 하고, 특정한 기술적인 환경이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의 글씨 연습을 위해 개발하기도 하는 등 글자가 쓰이는 상황에 따라 글꼴을 만드는 의도도 제각각이다. 요즘은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를 위해서 글꼴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 경우 글꼴이 일종의 아이덴티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보도니(Bodoni)' 같은 글꼴은 외형에서 보여지는 우아함 때문에 패션 관련 매체에 자주 등장하며 패션 분야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등 글꼴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경우도 생각보다 다양하다.

어떤 형식의 글이든 직접 쓰지 않는 이상 글꼴을 이용해서 작성해야한다. 만일 지금까지 글꼴 선택을 위해 고민한 적이 없다면 이제부터 한번 생각해봐도 좋을 듯하다. 글꼴의 선택에 따라 글의 성격을 잘 드러낼 뿐만 아니라 글의 내용도 자연스럽게 보여 좀 더 독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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