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오세영 시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육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티켓을 사들고
고향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출구엔 역부가 하나,
잃어버린 시간을 체크하고
답사를 떠나는 늙은 고고학 교수와 학생들과
상인이 서성거렸다.
창밖 고층빌딩엔
정치가들이 기른 비둘기가 날고
개가 한 마리
주유소 뒤뜰에 매여 있다.
차창에 기대어
비에 젖은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술잔에 잠긴 도시의 황혼과
쓰디쓴 감정을 들이마셨다.
비는 내려도 도시의 수목은
시들어가고
낡은 화물열차에 실려 떠난 여름은
한번 가서 와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떠나기 위하여
고립을 두려워한다.
한때 가슴 떨리게 했던
말씀이나 눈빛도
행복처럼 쓸쓸하게 떠날 것이다.
구겨진 지폐를 쥐고
고향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려도
백합의 뜰에 잠든 시간은
오지 않는다.

●시인 오세영(吳世榮·1942년~ ). 전남 영광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68년 「현대문학」 誌에 시 〈잠 깨는 추상〉 등이 추천되어 문단 데뷔. 첫 시집 《반란하는 빛》 출간 이후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의 저쪽》, 《벼랑의 꿈》, 《시간의 쪽배 》, 《봄은 전쟁처럼》, 《마른하늘에서 치는 박수 소리》, 《천년의 잠》, 등 20여권. 학술서적 《한국낭만주의시 연구》, 《20세기 한국시 연구 문학과 그 이해》, 《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 등 18권. 수필집 《왈패 이야기》 등 3권. 시론집 《시의 길 시인의 길》 등 2권. 번역된 시집: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10여권. 한국시협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만해상 문학부문, 공초문학상, 녹원문학상, 편운문학상 수상 외. 2008년 은관문화훈장 수훈. 충남대학교와 단국대학교를 거쳐 1985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현대문학 강의,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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