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상징적 기능을 갖고 있다. 택호(宅號), 즉 집의 이름은 우선 집주인을 상징한다. 예를 들자면 ‘이화장’이 이승만을 대신하는 이름으로 쓰이던 1950년대에는 ‘경교장’은 김구를 지칭하였다. 1970~80년대에는 ‘상도동’ ‘동교동’ 혹은 ‘연희동’이라는 지역 명칭이 집이름을 대신하여 권력과 거주인을 연결짓는 경우였다.

1960~7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등장한 한국의 아파트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압축 경제성장의 거주모델이자 건축산업을 떠받친 하나의 축이 됐다. 값비싼 서울 강남의 ‘압구정’ 아파트 등은 부의 상징이 됐다. 이렇게 근대와 전근대를 분명하게 가르는 한국의 공동주거 형태를, 한 프랑스 지리학자는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렀다.

포개어져 놓인 상자들 속에서 서로 서로 꼭 달라붙은 아파트에서는 그만큼 우리의 내면과 우주를 연결짓는 꿈도 줄어든다. 그래도 모든 사람들은 아파트를 꿈꾼다. 아파트에 대해, 아파트 생활에 대해 어떤 불평을 늘어놓든 하늘과 가까운 달동네에서, 땅에 파묻힌 반지하에서 아파트를 꿈꾼다.

그래서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 후보는 집 없는 서민에게 ‘아파트’ 선물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은행은 아파트 등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도록 앞장섰다. 신도시 아파트 촌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한가지 꿈은 이룬 사람들이다.

지금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다. 강남에 있는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2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3.3㎡(평당) 1억원이 넘는 가격이다. 무주택자와 서민은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집값 거품’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장기적인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시중에는 현금, 6개월 미만 정기예금 등 1,116조원이 넘는 부동(浮動) 자금이 떠돌아 다니고 있다. 반대로 울산의 집값(아파트·단독)은 5개월 째 전국 최대 낙폭을 기록 중이다. 지역기반 산업 장기 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다. 지역 곳곳에서는 짓고 또 지은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집 없는 서민은 여전히 많으니 ‘아파트 공화국’의 수수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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