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배호 화백

‘뉴욕에 가서 돈자랑 말고 보스턴 가면 학벌자랑 말라’는 말이 있다. 보스턴시 안팎의 대학들은 명문 하버드와 MIT, 터프츠대, 보스턴 칼리지 등 35개교에 달한다. 9월 초 새학기를 맞아 미 동부의 대표적 교육도시 보스턴 주민 70만 명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매년 이맘때면 미 전역에서 15만 명의 대학생들이 기숙사와 학교 주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시가지가 북새통을 이룬다. 교통지옥에다 무단횡단 하는 학생들에게 도로가 점령되는 새학기 시즌이다. 높이 3.3m인 다리 밑 도로엔 아무리 깜박이는 경고등을 붙여놔도 학생 이삿짐을 실은 차가 들이받아 차량 정체 사고가 발생한다.

술에 취한 학생들은 거리 곳곳 상점이나 주택 앞 화단에 토하고  차량 접촉사고도 비일비재하다. 학생이 많이 사는 아파트는 마치 대학 기숙사처럼 시끄러워 일부 입주자들은 아예 귀마개를 끼고 잔다고 한다. 학년이 끝나는 내년 5월까지 보스턴 대학촌 주민들의 불평은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인구절벽 시대를 맞아 3년간 ‘대학정원 1만명 줄이기’ 역풍을 맞고 있는 한국 대학가에선 보스턴 얘기가 즐거운 비명으로 들린다. ‘부실대학’을 포함, ‘기본역량’ 하위 36% 116개  대학은 정원을 최소 10%에서 35%까지 줄여야 한다.

갈수록 줄어드는 학생 수에 비해 포화상태로 늘어난 대학이 가시밭길에 들어섰다. 정원감축 대학 총장 등 수뇌부는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가 하면 폐교 조치가 가시화 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완전히 엇갈리는 상황에서 벼랑끝 한국의 대학들은 이제 ‘지원자’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평가해봐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대학도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 즉 미션과 비전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자아성찰과 함께 대학의 특성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보통 한국 대학의 순위는 대학 이름의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해 왔다. 특성화에 대한 고민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금 세계적으로 대학은 특성화로 생존을 가름하고 있다. 당신의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벼랑끝 한국대학의 살길 역시 학교 이름이 아니라 특성화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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