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동부 민간인 희생사건 피해자, 학교 종 쳤다가 "빨치산 도주 도와" 누명
서울중앙지법 "국가가 저지른 중대한 불법…피해자·유족에 1억 지급"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좌익으로 몰려 군경에 사살당한 민간인 피해자의 유족들이 법원 판결로 68년 만에 국가배상을 받게 됐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설민수 부장판사)는 '전남 동부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의 희생자 양모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유족에게 1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양씨는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당시 전국 4개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을 조사한 결과 전남 동부지역에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 35명 중 한 명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 7월 전남 보성의 한 국민학교에서 일하던 양씨는 학교 소사(小使)를 부르려고 종을 쳤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양씨가 종을 친 것이 빨치산에게 도망가도록 신호를 보낸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양씨는 이후 석방됐으나 보성이 인민군에게 점령당했다가 국군에 수복된 이후인 1950년 12월 다시 연행돼 산골짜기에서 사살됐다.

재판부는 "진실화해위의 결정 등 관련 기록을 보면 망인이 전남 동부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임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보성 경찰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망인을 살해해 기본권을 침해했으므로 국가가 유족들에게 재산상·정신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유족들이 사건으로 겪었을 정신적 고통, 상당 기간 계속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의 내용과 중대함" 등을 이유로 들어 사망한 양씨에 대한 위자료로 8천만원, 유족에 대한 위자료로 각 800만원을 산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 측은 진실화해위가 2008년 진실을 규명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으므로 3년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양씨의 유족은 2016년 말에야 양씨가 희생자로 등재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진실규명 결정이 나온 무렵 유족들에게 통지하거나 그런 노력을 했다고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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