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폐가의 찢어진 문풍지라 하는가
금세라도 파편이 쏟아질 것만 같은 금간 거울이라 하는가
벽도 지붕도 없이 활짝 열려 있는 집
알뜰살뜰 가꾸니 허공도 명당이다
낭하와 처마사이 투명한 집 한 채
아침저녁으로 이슬이 놀러 와서는 눌러 앉고
가끔 물잠자리나 배추흰나비가 귀한 목숨을 맡기기도 하는 집
이 집 너머 속이 훤한 물길을 따라가면
할머니와 아버지가 삶을 내려놓은 집이 있다
달빛 아래 오롯이 앉은 벙어리어머니가 
침묵을 풀어내 적요寂寥를 수놓던 집이 있다
내 유년의 가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액자가 걸린 

 

원무현 시인

◆ 詩이야기 :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고향집은 폐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고향집에 가고 싶습니다.
지금은 안 계시는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내 어린 시절 사진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 약력 : 1994년 시집『너에게로 가는 여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3년 격월간 <시사사>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강철나비』외 여러 권을 발간했다. 
현재 (사)부산시인협회와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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