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문예위 <팝업씨어터> 사건 징계 시효 만료 D-2
"당시 트라우마로 씨어터카페 오는 것도 힘들 정도"
"공연 보러 온 가족 앞에서 방해…하찮은 취급 받은 모멸감 느껴" 
연극인들 공연 방해 및 검열 가담한 문예위 가담자 처벌 촉구

"정권이 바뀌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아직 징계 없이 조치 중이라고만 하니 답답하네요. 징계 만료까지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김원정 배우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가득했다. 오늘(15일) 오전 11시 대학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 앞, 연극인 10여 명이 피켓을 들고 섰다.

피켓에는 '언제까지 조사 중, 징계시효 D-2. <팝업씨어터> 사건 가해자 중징계하라', '버젓이 공연방해, 버젓이 대본검열, 버젓이 없었던 일', '<팝업씨어터> 공연방해 검열가해 당사자분들 떳떳하게 벌 받으세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들은 요구는 단 한 가지, 바로 3년 전 일어난 '팝업씨어터' 사태의 가해자인 문예위 직원들에 대한 징계이다. 

당시(2015년 10월 18일) 김정 연출의 연극 '이 아이'가 대학로 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문예위 직원들의 조직적인 방해로 무산됐다. 공연에 수학여행 중 죽은 아이가 노스페이스 잠바를 입고 나타나는 장면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공연을 못 올리게 막은 것이다.

무대 탁자를 아예 치워버리고, 배우들이 등장하는 통로에 의자·탁자를 미리 옮겨놓은 뒤 출연을 가로막았다. 배우가 치워 달라고 요청하자 문예위 한 간부는 "옮기지 말라"며 고함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연극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동안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예술인과 관련 작품에 대한 검열 및 지원 배제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돌던 때,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분노한 연극인들이 씨어터카페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를 기점으로 '권리장전 - 검열각하', '블랙텐트' 등 블랙리스트 사태에 저항하는 연극계 연대행동이 이어졌다. 

이후 정권이 바뀌었고,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도 꾸려지면서, 연극인들은 블랙리스트 가담자들이 징계를 받을 것으로 당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3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이틀 뒤(17일 자정을 기점)면 징계 시효는 만료되고, 당시 공연방해와 검열을 자행한 가해자들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이날 피켓시위 현장에서 만난 김정 연출은 "지금도 시어터카페에 오는 게 힘들 정도로 당시 나와 배우들은 최악의 모욕감을 느꼈다"며, "이후 작업 때문에 배우들과 만나도, 이 이야기를 복기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에게 큰 상처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진심어린 사과는 받지 못했다. 문예위가 진정으로 예술가를 보호하고 위하는 조직이라면, 당시 위의 눈치를 보느라 예술인들을 내쳤던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상응하는 징계를 받기 바란다. 그것이 예술하는 동료로서 당연한 몫이고, 미래를 위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당시 함께 현장에 있었던 김원정 배우는 "당시 공연을 방해했던 유인화 센터장이 입고 있던 옷이 아직도 기억 날 정도로 잔상이 깊게 남은 사건이다"며 "동료 배우의 경우 공연을 보러 오신 부모님 앞에서 그 일을 겪었다. 그동안 비록 돈은 안 돼도 연극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하찮은 취급을 받았다는 모멸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러한 사건이 두번 다시 안 일어나게 하려면, 징계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표본이 돼야 앞으로 그런 일은 안 일어나지 않겠나. 마음이 불편하다고만 하지 말고, 잘못을 인정했으면 그 대가를 받으라"고 덧붙였다.

한편 문예위는 블랙리스트 실행과 관련해 가해자들을 조치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입장이다. 징계시효 만료를 앞두고 있는데, 아직 아무 조치도 없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급히 징계위원회를 꾸리고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회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징계위원회는 문예위 직원과 외부위원 등 약 7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지난 3일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도 징계 대상자와 수위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징계위는 오는 19일 2차 회의를 열고 결론을 짓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날은 '팝업씨어터' 사건 징계 시효가 만료된 뒤다. 

앞서 지난 6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문체부에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공무원들과 산하기관 직원들 총 130명을 징계 및 수사의뢰하라고 권고했다. 이중 징계 권고 대상자는 104명이다. 예술위는 징계 권고 대상자가 23명으로, 산하기관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