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회계시스템 방치 사립유치원 비리로 이어져
교육계 잘못된 관행 일벌백계해 근절 계기 마련해야
늦게나마 마련되는 종합대책 진정한 혁신될 수 있길 

 

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전국의 비리 유치원 명단이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비리 유치원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청원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연이어 게시되는 등 국민적 공분이 연일 확산되고 있다. 

비리 내용도 충격적이고 어처구니가 없다. 교육당국이 지난 5년간 벌인 감사 결과 1,800여군데 사립 유치원에서 적발된 비리는 5,900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공개된 비리 유형도 정부 지원금으로 명품 가방 구입, 아파트 관리비와 수입 차량 유지비에 충당하는 등 개인적용도로 사용하다가 적발된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급식 식재료 대신 술과 옷을 구입하거나 심지어 성인용품을 구입한 경우도 드러났다. 과연 유아 교육기관에서 벌어진 일인가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도덕적 해이의 끝이 어디인지 허탈하기만 하다.
또한, 사회복무요원의 장애학생 폭행 사건으로 교육부가 특수학교 전수조사 방침을 밝힌 지 이틀 만에 타학교에서도 교사 10여명이 학생을 폭행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교육 관련 전문가들은 모두 ‘사립’이라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국·공립학교는 교사가 5년마다 순환 배치되지만, 사립은 교사가 수십 년 한 학교에 머문다. 동료 교사의 비위를 제보하기 어렵고, 다른 교사들과 교류가 단절되다 보니 변화에도 둔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공립전환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2조원의 국가 지원금을 쌈짓돈 쓰듯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사립유치원의 불투명한 회계 시스템과 이를 방치한 교육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 탓이 크다.

회계시스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교육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최적화 방안을 찾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수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립유치원 단체의 힘의 논리가 정치에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관리감독 주체인 시·도교육청도 해당 비리 유치원을 적발하고도 명단 공개를 거부하는 등 선거를 의식한 안이한 모습을 보이며 비리규모를 더욱 키웠다. 교육당국의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사립유치원도 유아교육법상 정부 감독을 받는 교육기관인 데다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회계 관리 감독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기회에 투명한 회계 감사시스템을 도입하고 정부 지원금도 보조금으로 성격을 바꿔 처벌 근거를 마련하는 등 사립유치원 비리를 원천봉쇄해야 할 것이다. 정부에선 뒤늦게 대대적인 종합대책을 마련하느라 법석을 떨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지만 임시방편이 아닌 교육 백년대계의 기초를 다질 대책을 내놔야 할것이다. 

제대로 백년대계를 세우기 위해서도 더 이상 잘못을 덮어주기보다는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확인되고 있는 여러 형태의 교육계 비리가 과거로부터 이뤄져 온 관행이라는 이유로 관대한 처분을 기대하는 것은 용납되서는 안될 것이며 소수의 사례라고 치부하고 모른 체 해서도 안 될것이다. 잘못에 대한 관대함과 무시가 교육계의 불신을 초래한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육계에서의 잘못된 관행은 마땅히 처벌받고, 이를 계기로 완전히 근절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느끼는 억울함에 대해서는 교육계 전체의 신뢰회복과 교육발전을 위한 과도기의 고통으로 아파하면서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는 법이다.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아이를 뛰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교육기관의 비리와 폭력사태를 극복하지 못한 채 ‘세계 수준의 대학’이나 연구를 운운하는 것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교육현장의 의식과 문화를 바꾸는 진짜 혁신을 이뤄야 할 때다. 깊은 고민과 성찰을 통한 대안이 이번에는 나오길 기대하고. 교육현장에 대한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묻고 또 물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길을 헤매서는 이 나라의 백년대계는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감계(鑑戒) : 지나간 잘못을 거울삼아 경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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