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중략)/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수 최양숙이 불렀던 노래 ‘가을 편지’는 고은 시인의 즉흥시에 시대의 가객(歌客) 김민기가 곡을 붙였다. 1971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김민기, 양희은, 최백호, 이동원, 조관우, 보아, 박효신 등이 리메이크 해 불렀을 정도의 애창곡이다.

화창한 가을엔 ‘일년 내내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과일과 곡식이 알알이 속을 채우는 가을날엔 한 올의 빛도 귀하다. 릴케도 시(詩) ‘가을날’에서 ‘가을 햇살의 귀함을 마지막 과일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내리소서’라고 읊었다.

인간은 지구의 역사만큼이나 장구한 세월을 빛과 함께 진화해왔다. 가을 따뜻한 햇살이 선사하는 풍성한 색채와 빛의 입자는 뇌의 회로도 새롭게 배선함으로써 스스로의 치유를 돕는다. 웬만한 우울증 환자는 회복 시키기도 한다.

그 봄날에 싹을 틔운 수많은 곡식들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들국화가 소박한 꽃잎을 피워 올린다. 보릿고개를 지나 한여름에 등이 휘도록 땀을 흘린 농부는 허리를 편다. 곳간 가득 채워진 가을의 수확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가을하늘 아래 있는 그 어떤 것들도 아릅답고 풍요롭지 않은 것이 없다. 날씨가 맑고 곳간이 차면 인심은 넉넉해진다.

우리의 가을은 서양의 가을보다 더 풍성한 축복이 내리는 계절이다. “전쟁으로 할퀴고 발기고 해도/ 가을만은 제자리에 두어 두십시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아도 좋으니/ 가을만은 제때에 두어 두십시오.” 조국의 가을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은상 시인이다. 그는 전쟁의 와중에도 가을만은 그대로 두어달라고 노래했다. 가을은 6·25를 겪고 있던 한민족의 마지막 소망이었는지도 모른다.

평화보다 값진 것은 없다. 전쟁보다 평화를 원하는 우리들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만은 제자리에 둬 달라는 그 시인의 소망이 가을편지가 되어 우리들 가슴을 적시고 있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