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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칼럼] 가을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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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하 시인
  • 승인 2018.11.06 22:30
  • 댓글 0

상대방과 마음이 통하는 것은 어려운 일
누군가에 대해 고민하며 시 쓰는 올 가을
소박한 은행나무 닮은 평온한 마음 소망   

 

이강하 시인


소박한 삶은 마음의 생태계를 정화시키고 깨끗하게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말이 실감나는 가을이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은 아름다운 것이다. 


계속 노력을 하는데도 그 노력의 성과만큼 일의 진전이 없을 때는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나는 대인관계에서만큼 냉철하다. 노력해서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그것에 대해 더는 속도를 내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은 이미 저쪽을 향해 가고 있는데 그 뒤를 쫒아 속도를 냈다가 외려 상대에게 미안해질 수 있으니까. 


서로 마음이 통해 함께 평등해진다는 것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상처를 받고 사랑을 받고 이 두 가지의 경쟁 속 교차점이 연속되어지는 과정처럼. 굴곡진 우리 경제처럼 올해의 가을도 그냥 오는 가을이 아닐 것이다. 어제 내가 쓴 시 한 편을 꺼내 읽은 후 “당신, 편안해? 지금은 괜찮아?” 라고 마음을 확인해보면 무거운 어제의 그 자리다. 가족관계에서만큼은 단순해질 수가 없다는 것일까. 혈육 간에 복잡한 일이 생기면 하루하루가 무미건조하다. 문학행사에 참여하고 싶어도, 급한 청탁이 왔어도 글을 쓸 수가 없다.


누군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서 거침없이 행동하는 나를 지켜보는 신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내가 누군가에 대해 아파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시를 쓰는 일이 전부라고 말하면 식구들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아! 벌써 11월이라니! 북쪽은 이미 단풍이 지고 있고 남쪽은 단풍이 한창일 테다. 오늘의 마음이 어찌하든 잠시만이라도 오늘을 벗어나고 싶어 남편과 함께 석남사를 거쳐 운문사를 가기로 했다. 


석남사는 결혼 전에도 가끔 찾았던 곳이다. 차들이 지나가면 뿌옇게 흙먼지가 피어오르던 길, 그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의 기억이 상냥하게 떠오른다. 버스의 맨 끝 좌석에 앉아 즐거워했던 그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깨끗하다. 너무나 깨끗해서 다시 그 시절이 되고 싶어 자주 이곳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찰의 주변이 그렇지만 석남사는 입구에서부터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이다. 마치 고향 옛집에 들어서는 것처럼 편안하다. 


태양의 알갱이가 미끄러지듯 하르르 쏟아져 내리면서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여백이 참 곱다. 자연에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코끝을 휘감는 고요가 작은 물고기들을 불러내고 태고의 석탑들도 공중에 둥둥 떠다니게 했다. 나는 이때의 단풍을 가장 사랑한다. 평평한 길을 걸어 올라가다보면 오른쪽 텃밭에 탱자나무울타리가 있었는데, 그 울타리 너머로 스님들이 채소를 뽑던 모습도 보곤 했었는데, 지금은 만날 수 없다. 무슨 이유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으나 아련한 기억의 한 모퉁이가 됐다.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 조금 전만 해도 햇볕이 쨍쨍했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지 서둘러 석탑을 둘러보고 운문사로 향했다. 운문사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면 설악산을 능가할 만큼 수려한 단풍을 만날 수 있다. 골짜기를 오르내리는 구름 또한 감탄을 자아냈다. 학이 날아가는 구름의 형상이 더 그러했다. 500년이 넘은 처진소나무도 여전히 건재했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400년 넘은 은행나무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운이 좋았다. 잘 익은 은행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장엄했다. 어쩜 저렇게 수천 열매를 매달고도 평온하게 보일까. 소박하고 단순한 마음이어서 이렇듯 당당할까. 나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번갈아가면서 힘껏 끌어 안아보았다. 오래오래 숨을 멈춘 채.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전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내 귀는 아직 세상에 욕심이 많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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