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박기집회 방해' 시민대책위 회원 무죄…"위장집회, 집회자유 침해행위"
대기업 편법 관행에 경종…신고집회 70% 이상 차지, 실제 안 여는 경우 많아 

기업이 인근에서 다른 집회가 열리지 못하도록 직원들을 동원해 개최하는 '위장 집회'(알박기 집회)는 법이 보장해야 할 집회가 아니므로 이를 방해했더라도 집회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알박기 집회는 주로 대기업이 자사에 대한 항의성 집회를 막기 위해 집회장소를 선점할 목적으로 이용된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고모(43)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유성기업 범시민대책위' 회원인 고씨는 2016년 4월 서울 서초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진행 중인 '성숙한 집회문화 만들기' 집회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현대차 본사 앞에서는 현대차 보안관리팀장인 황모씨가 신고한 '성숙한 집회문화 만들기' 집회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고씨 등 유성기업 범대위 회원 25명은 집회현장에 무단으로 끼어들어 유성기업 사태에 대한 현대차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하고, 이후 경찰의 5차례 해산명령에도 불응하고 계속해 집회를 방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에서는 현대차 직원들이 신고한 집회가 집회방해죄의 보호대상인 '평화적인 집회'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집시법 3조는 폭행이나 협박 등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를 방해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한다.

1·2심은 "현대차 직원이 신고한 집회는 헌법과 집시법이 보장하려고 하는 집회라기보다는 현대차의 경비업무 일환으로 봐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현대차 측의 선행 신고로 현대차와 관련 있는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현대차 본사 정문 앞 등을 집회장소로 선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무죄를 그대로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대기업들이 본사 인근의 집회를 미리 선점하는 방식으로 회사에 대한 항의성 집회 등을 사전차단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찰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 10월까지 현대차 본사 인근으로 신고된 집회 건수는 총 2천680건으로 이중 2천232건(83.2%)이 현대차 측이 신고한 집회였다.

하지만 현대차 측이 실제로 연 집회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천54건(47.2%)에 불과했다.

삼성그룹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기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본사 인근으로 신고된 집회 1천333건 중 983건(73.7%)이 '삼성입주관계사 직장협의회'가 신고한 집회였다.

이렇게 신고된 집회가 실제로 열린 사례는 2014년 38건, 2015년 10건, 2018년 9건에 그쳤다.

고씨 측을 변호한 탁선호 변호사는 "대기업의 집회 선점관행은 오히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이번 현대차 사건의 경우 경비인력을 경비업무 외에 사용했다는 점에서 경비업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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