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학부모들에 보낸 ‘진급신청서’가 누리꾼들에 의해 공개되면서 적잖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진급신청’은 현재 유치원에 다니는 원아들 중 내년에 다시 다닐 원아를 신청 받는 절차로 보인다. 내년 유치원 운영 계획을 위한 당연한 절차지만, 문제는 신청서에 적시된 내용이다.

지난 7일 `사랑하는 자녀의 내년도 진급을 앞두고 계신 부모님께'라는 제목의 신청서에는 내년도 유치원 운영에 대한 언급이 있다. 수업시간은 오전 8시 40분부터 낮 12시 40분까지 4시간이며, 원생들은 점심 도시락을 지참해야 하고, 차량운행은 하지 않겠다고 알렸다. 방학은 여름 5주, 겨울 5주 등 연간 10주로 고지했다. 통상 유치원의 여름과 겨울의 방학 기간은 1주나 2주 정도다. 여기에 누리과정비를 보호자가 정부로부터 직접 수령해 납부하라는 불가능한 조건도 붙였다. 비아냥거림이 섞인 문구도 있다. `공짜라는 이유로 국공립유치원을 선호하는 부모님 입장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단언컨대 이에 굴복해 사립유치원이 교육부 통제 아래 들어가면 대한민국 유아교육은 창의성을 잃고 초·중등교육처럼 획일적인 관치교육으로 나갈 것'이라든지 `학부모 부담금 없이 (공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국공립유치원에 지원하시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한 혜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도 담겼다. 터무니없는 교육 계획을 내놓으며 학부모들이 알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는 것과 진배없다.

정부와 시교육청의 사립유치원에 무차별적인 압박의 강도가 어느 정도 인지 짐작되지만 그렇다고 유치원의 이 같은 대응은 용인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이 유치원은 울산시 교육청의 지난 2015년 감사에서 시설관리와 행정일반 분야에서 각각 주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 곳이다. 놀이터 수선공사를 하면서 공사명세서 등 계약 증거가 되는 서류를 구비하지 않았다가 적발됐다. 원장이 함께 운영하는 또 다른 유치원은 지난 2017년 감사에서 예산·회계 2건, 행정일반 1건 등 3건이 적발돼 모두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일부 교직원에 대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보수 지급 대상이 될 수 없는 교직원들에게 보수를 지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비위에 대한 반성은커녕 교육기관으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선마저 넘어버린 유치원의 행태에 시민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억울함이 있으면 정당한 방법으로 소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떳떳해질 수 있음을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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